금융 당국이 고가 전세에 대한 전세자금대출 보증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시장에서는 혼란스럽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가 전세 기준으로 전세보증금 15억 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실제 보증이 제한되면 전세로 이사를 계획 중인 차주들의 자금 계획이 꼬이게 된다. 특히 ‘풍선 효과’가 발생하면서 대출 규제를 받지 않은 기준선 아래, 가령 15억원보다 가격이 낮은 중저가 전셋값이 순차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10·26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 이후 강도 높은 규제가 또 추가되면서 금융 당국이 실수요자 피해를 가중시킨다는 비판도 나온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고가 전세에 대한 전세대출 보증이 제한될 경우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당장 강남·서초·송파 등 인기 학군 지역으로 전세 대출을 받아 이사를 계획했던 차주들의 계획이 틀어지게 된다. 은행권의 관계자는 “자녀 학군 등으로 전세가가 15억 원이 넘는 주택에 살려는 사람의 선택지가 많이 줄어들게 된다”며 “전세의 월세화를 가속화시키고 현재 전세대출 이자보다 월세로 책정되는 금액이 훨씬 큰 점을 고려하면 소비자의 부담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 교수도 “대출 제한이 걸리는 가격대의 반전세 전환율이 빨라질 것”이라며 “주거 비용이 지금보다 늘어나고 이에 따라 내 집 마련 기간이 지금보다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이 이 같은 부작용을 꼽는 데는 금융 당국이 최근 SGI서울보증의 전세대출 보증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게 알려지면서다. 전세대출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주택금융공사, SGI서울보증의 보증을 통해 이뤄진다. 이 중 서울보증은 보증 기관 중 유일하게 대출이 가능한 전셋값에 제한을 두지 않은 채 최대 5억 원을 대출해주고 있다. 주금공과 HUG가 수도권 5억 원 이하 전세에 2억 2,000만~4억 원가량을 대출해주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에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9억 원 넘는 전세도 많아졌기 때문에 이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서 (보증 중단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규제가 실수요자들의 혼란을 부추긴다는 점이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대책을 한 번에 만들어서 내놓아야 하는데 여러 차례 과격하고 급격한 내용을 쏟아내고 있다”며 “(기준 가격을 올리는 것보다) 보증 비율을 조정해야 할 때”라고 언급했다. 신성환 전 금융연구원장 역시 “차주가 상환 능력이 있으면 (대출을) 해줘야 하는데 정부가 몇 억 이상은 전세대출이 안 되게 하는 것 자체가 황당한 규제”라고 꼬집었다.
특히 전세대출의 90% 이상이 보증 기관을 통해 대출이 이뤄지는 구조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은행 입장에서는 내년 강화된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받게 된 마당에 보증 기관의 보증이 제한된 전세대출에 자체적으로 나설 유인이 적다. 사실상 강남·서초·송파권의 고가 전셋집은 ‘현금 부자’만 얻을 수 있게 된다. 고가 전세의 기준 이하인 전셋집으로 수요가 몰리면서 기준선을 중심으로 전셋값이 인상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다만 부동산 시장 열풍으로 전셋값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반응도 있다. 서울보증 최대 대출 한도가 5억 원인 점을 고려하면 15억 원을 초과하는 선에서 전세대출 보증이 제한될 경우 10억 원 이상을 자비로 마련해야 하는 데 이를 서민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주장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전셋값이 최근 많이 오른 만큼 고가 전세의 기준을 현실화하는 측면이 강하다”며 “내년에도 가계대출 총량 규제 등이 적용되는 만큼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선별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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