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3함대 강감찬함 소속 정모 일병이 선임병들의 가혹행위에 시달린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과 관련해 군인권단체가 함장 등 지휘부가 보호 조치를 다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기로 했다.
군인권센터는 9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감찬함 함장(대령)과 부장인 중령(진)이 정 일병의 생명권을 침해하고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게 했다는 취지로 인권위에 진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센터에 따르면 정 일병은 지난해 11월 어학병으로 해군에 입대해 올 2월 강감찬함에 배속된 뒤 선임병들로부터 폭행·폭언과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정 일병은 이를 지휘부에 신고했으나, 피해가 이어지면서 결국 신고 석 달만인 6월 18일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센터는 정 일병의 휴대전화 포렌식을 통해 확보한 함장과 병영생활상담관 등과의 메시지를 근거로 그가 '방치'에 가까울 정도로 부적절한 지휘관들의 대응 탓에 사망에 이르게 됐다고 주장했다.
공개된 메시지에 따르면 정 일병은 3월 16일 오후 8시 20분께 함장에게 구체적인 피해 사실을 알리며 자해 충동과 극단적 선택 생각이 이따금 든다고 털어놓았다. 선임병인 상병의 전출 조치를 희망한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함장은 이에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았을까 생각하니 함장으로서 가슴이 아프다"며 "전혀 미안해할 필요 없고 함장이 책임을 지고 문제 해결해줄게"라고 답했으나 즉각적인 조처는 없었다고 센터는 지적했다.
센터는 "다음 날 함장은 피-가해자 분리라며 피해자의 보직을 변경하고, 다른 격실로 자리를 옮겨준 데 그쳤다"며 "정 일병은 계속 가해자들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정 일병이 당시 친구, 동기에게 보낸 메시지에는 "열흘 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밤에 혼자 우는 상황"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정 일병은 3월 28일 다시 함장에게 메시지를 보내 불안 증세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정신과 치료와 하선 후 육상 전출을 희망한다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틀 뒤 정 일병이 병영생활 상담관에게 보낸 메시지 내용에 따르면 지휘부는 되레 "의지가 없으면 안 된다. 그럼 이제 널 도와줄 수 없다"며 견딜 것을 권했다고 센터는 전했다.
임태훈 센터 소장은 "군이 가해자의 편에서 피해자를 궁지로 몰아넣고 참극을 빚어내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장관 이하 군 수뇌부가 상황 모면 외엔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며 인권위 조사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해군 관계자는 “해군은 해당 사건의 엄중함을 인식한 가운데 병사 사망과 관련한 병역 악폐습 전반을 엄정하게 조사했다”며 “함장 및 부장에 대해서는 징계위원회에 회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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