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증시 간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자 그동안 코스피를 떠받쳤던 국내 투자자들이 앞다퉈 ‘서학 개미’로 변모하고 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의 내년 실적 전망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 코스피 거래 대금은 연초에 비해 반토막이 났지만 해외 주식 투자를 위한 외화예탁금은 계속 불어나고 있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유가증권시장의 일평균 거래 대금은 11조 2,575억 원 수준으로 집계됐다. 코스피가 상승 랠리를 펼쳤던 지난 1월(26조 4,778억 원)과 비교하면 57% 넘게 줄어든 수치다. 코스피 이탈 현상은 국내 증시 조정이 시작된 9월부터 본격화됐다. 9월 코스피 거래 대금 규모는 267조 원 수준으로 전월(326조 원) 대비 20% 가까이 줄었는데 10월에 추가로 더 빠지면서 223조 원 수준까지 쪼그라들었다.
반면 해외 주식 투자는 급증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보관된 외화증권 보관액은 올 1월 820억 달러(약 97조 원)에서 지난달 976억 달러까지 불어났다. 특히 지난달부터는 미국·유럽 등 선진 시장에 대한 외화예탁금이 크게 늘었다. 10월 미국 주식 보관액은 631억 달러로 연초 대비 38% 증가하며 올해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로권 주식 보관액(10월 1억 달러)의 경우 이 기간 70% 넘게 폭증했다.
두 달 넘게 이어지는 코스피 조정장에 지친 국내 투자자들이 주식 자금을 먼저 회복세를 타기 시작한 미국 등 해외 증시로 빠르게 옮겨 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9월 초만 해도 3,200 선을 가뿐히 넘기던 코스피는 인플레이션에 따른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및 금리 인상 우려, 글로벌 공급망 충격, 중국 전력난 등 잇단 악재에 연달아 타격을 받으며 현재까지 3,000 선을 밑돌고 있다. 반면 미 증시는 테이퍼링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해소되자 기다렸다는 듯 천장을 뚫었다. 3분기 주요 기업들의 호실적이 시너지로 작용하면서 이달 들어 뉴욕 증시의 3대 지수가 연일 신고점 경신 랠리를 펼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많은 요인 중에서도 국내 기업들의 내년 이익 전망치에 대한 눈높이가 꾸준히 낮아지고 있는 점이 코스피 하방 압력으로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출제조업 중심의 경제 구조상 내년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큰 글로벌 공급망 충격 우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설명이다. 이재만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유동성 공급이 없으면 주가 수익률을 결정하는 것은 이익 증가율”이라며 “수출 금액 등 향후 국내 기업들의 이익 전망과 관련한 의구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개인 투자자들의 비중이 높은 코스피 대형주들의 향후 실적 전망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자금 이탈을 부추긴 것으로 보인다. ‘국민주’로 불렸던 삼성전자(005930)와 시가총액 2위 기업 SK하이닉스(000660)의 경우 올 3분기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하고도 주가가 연고점 대비 20% 넘게 하락한 상태다. 최근 국내 증시에서 향후 기업 경기가 꺾이더라도 영향을 덜 받을 콘텐츠주,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에 나선 미래기술주들에 투자 심리가 집중되는 현상 역시 이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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