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기업가 정신은 세계 흐름입니다. 스탠퍼드·UC 버클리·MIT는 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하버드대도 공대를 키우고 지난해 학교 주변에 500여개 기업이 생기는 등 (밸리 조성에) 발벗고 나서고 있어요.”
이광형 KAIST 총장은 9일 KAIST 정근모컨퍼런스홀에서 열린 ‘제1회 대학 기업가 정신 토크 콘서트’ KAIST편에서 “대전-세종-오송 트라이앵글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미국에서 스탠퍼드대와 실리콘밸리, 매사추세츠공대(MIT)와 루트(Route) 128, 노스캐롤라이나대와 리서치트라이앵글처럼 대학이 주면 밸리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총장은 “젊은 영혼의 가슴에 불을 질러야 한다. 세계 최초 연구를 하고 혁신해야 한다. 1랩1창업도 필요하다. 교수가 직접 하거나 학생과 같이 해도 된다”며 “1인당 국민소득(GDP) 4만달러 시대의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KAIST 입주 스타트업인 이성옥 대표는 “AI 분석을 통한 어린이 정서 심리 예측 서비스로 해외 진출도 준비 중”이라며 “하지만 3년 전 KAIST에서 기술이전을 받기 위해 6곳의 랩을 노크 했는데 다 안됐다. 문턱이 높다는 것을 실감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이에 이 총장은 “직원들이 인센티브가 없어 열심히 안한다”며 “기술이전 조직(TLO)의 라이선싱 부서를 민영화 하겠다. 건당 20만~30만원씩 줘 보험사 직원이 영업하듯이 만들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KAIST-삼성전자 산학협력센터장)는 “산학협력, 기술이전, 창업이 잘 안되는 이유는 교수 승진에 별로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라며 “파격적으로 얘기하면 테뉴어(65세 정년보장 교수) 제도를 없애야 한다. 저부터 테뉴어를 반납하고 계약직으로 전환할 용의가 있다”고 깜짝제안을 했다. KAIST에 삼성전자 반도체 계약학과를 만들기로 한 김 교수는 “교수·학생 평가 방식을 과감히 바꿔야 한다. 창업하면 박사를 줄 수도 있는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며 “교수 대부분이 논문만 쓴다. 제일 쉽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과거 창업 했다가 일찍 문 닫아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며 테뉴어를 반납하고 매년 평가를 거쳐 70~80세까지도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되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이 총장은 “테뉴어 반납 얘기는 혁명적 제안”이라며 “일단 보직교수들에게 석사과정생이 창업하면 논문 안쓰고도 졸업할 수 있도록 만들자는 얘기를 6개월 전에 했다. 각 과별로 창업지도교수를 두자고 했다. 다만 실무 검토가 끝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대학은 세상을 바꾸는 사람을 길러야 한다. KAIST에서는 어떤 것을 해도 허용되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정부가 KAIST 규제 샌드박스도 해줬으면 한다. 괴짜의 놀이터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이 과정에서 실패도 자산으로 삼을 수 있도록 실패연구소를 만들어 도전 문화를 격려하겠다고 했다.
이 총장은 ‘아직도 한국의 교수 창업가 중 나스닥 상장 사례가 없다’는 지적에 대해 “세계 기술 흐름과 시장을 보고 창업을 해야 한다”며 학교가 글로벌 교두보·징검다리 역할을 하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이날 토크 콘서트에서는 교육·연구·창업을 동전의 양면처럼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국내와 실리콘밸리에서 총 5개의 스타트업을 창업한 배현민 KAIST 교수는 “학교 지식기술센터장으로서 보면 특허가 있다고 해서 기술 이전이 쉬운 게 아니다”며 “사회와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해법을 구할 때 창업에도 성공하고 논문도 탑저널에 실을 수 있다. 같이 한 학생들도 창업 생태계 활성화에 힘을 보태게 된다”고 기대했다. 실리콘밸리처럼 기술 창업을 활성화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첨단 현미경 스타트업을 창업한 박용근 KAIST 교수는 “대학에서 창업 문화의 씨앗이 뿌려지고 있으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어려워한다”며 “하지만 창업을 하면 연구, 교육 패러다임도 혁신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김 교수는 “홧을 찾는 훈련이 중요한데 질문을 많이 해야 한다”며 “오징어 게임처럼 남들이 짜놓은 판에서 하는 게 아니고 스스로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고 소신을 피력했다. 김영태 KAIST 창업원장은 이어 “이스라엘에서 기술혁신 벤처를 많이 하는 것도 유대인들이 질문을 쏟아내며 융합해 창의성을 발휘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스마트 팩토리 솔루션사를 창업한 장영재 KAIST 교수는 “홧을 어떻게 하느냐는 현장에 기반한 연구를 하면 된다”며 “산업에 필요한 것을 부여잡고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면 주목받는 논문도 쓰고 창업도 할 수 있다. 교육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그는 현재의 학교 행정은 교원창업 활성화와는 일부 상충된다는 느낌도 고백했다. 이에 김보원 KAIST 대외부총장은 “창업 장려를 위해 학생 휴학을 늘리고 여러 단계를 간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매달 학내 구성원들의 타운홀 미팅에서 창업에 제약이 되는 것을 찾아 없애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원장은 “벤처기업인과 대기업 관계자들과 매칭해 교수가 최고기술책임자(CTO) 역할을 하고 석·박사 창업도 활성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남민우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장은 “혁신하고 도전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근간은 기업가 정신이다.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데 중요하다”며 “기업가 정신을 갖고 ‘닥창’(일단 닥치고 창업)하고 산학협력을 활성화 해야 신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자리에서는 국가 R&D 시스템의 비효율성에 대한 지적도 적지 않았다. 박 교수는 “창업한 뒤 기업이 원하는 것을 보니 교수 연구보다 앞서 있다”며 “정부의 탑다운 R&D 과제들은 이미 3~5년전에 기업들이 훑고 지나간 내용이 많다”고 지적했다. 배 교수는 “정부 R&D 자금은 내년에 30조원이나 되는데 큰 주제를 정해 집중투자하면 국가 경쟁력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은 너무 잘게 쪼개 나눠줘 거둬들일 때 경쟁력이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조남준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는 “난양공대는 카이스트를 모델로 만들었지만 캠퍼스를 산학협력 하는 리빙랩화해 성장동력을 키우고 있다. 지금은 KAIST가 난양공대를 벤치마킹해야 할 판이다”며 “남 따라하는 연구가 아닌 새 가치를 창출하는 혁신의 플랫폼이 돼야 한다. 인재가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자리에서는 정보기술(IT), 조선, 자동차를 합친 것보다 더 큰 바이오헬스 산업을 키우기 위해 과학기술원 일부에 의대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 총장은 “병원 기기와 약품은 거의 수입한다. 4만달러 시대로 가려면 바이오헬스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며 “KAIST, 포스텍, GIST에서 의전원 같은 의대를 만들어 의사과학자를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우식 KAIST 이사장은 “대학의 사명인 교육 충실, 연구 심화, 봉사 확대를 위해 재정이 튼튼해야 한다”며 “외부 후원도 받아야 하지만 도전·모험·창의를 핵심으로 한 기업가 정신을 갖고 벤처·스타트업을 많이 창업해 이익을 극대화하고 사회를 좋은 쪽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대전=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