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고물가·고금리가 한꺼번에 나타나는 것은 예상치 못한 공급망 충격이 경제 회복세와 맞물리면서 복합적으로 발생한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공급 병목 등으로 국제 유가가 오르면서 물가를 자극하자 중앙은행의 긴축 시계도 빨라지고 있다. 공급 병목이 언제 해소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등 주요국의 정책 전환마저 예고된 만큼 불확실성이 점차 커지고 있어 지금 내놓는 내년 경제 전망이 의미 없을 정도라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전문가들은 통제 불가능한 대외 리스크가 커지는 상황일수록 피해가 예상되는 계층과 기업 등에 대한 철저한 선별적 지원과 함께 정부는 만약을 대비한 재정 건전성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형수 K-정책플랫폼 원장은 “위기 극복 이후 빠르게 재정이 정상화되던 과거 위기와는 달리 이번에는 코로나19 종식 후에도 만성적 재정 악화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재정 적자와 국가 채무 한도를 법으로 규정하는 재정준칙을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1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수입물가지수가 1년 전보다 35.8% 오르면서 지난 2008년 10월(47.1%) 이후 13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한 것은 국제 유가의 영향이 가장 크다. 국제 유가는 두바이유 기준으로 9월 평균 배럴당 75.90달러에서 10월 평균 81.94달러로 약 8% 급등했다. 지난해 10월 평균(40.67달러)보다 두 배나 오른 상태다. 국제 유가를 포함한 각종 원자재 가격 상승과 함께 글로벌 공급 병목현상마저 복잡하게 뒤엉키면서 전 세계 각국의 물가가 치솟는 상황이다.
문제는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는 글로벌 공급 병목이 언제 해소될지 좀처럼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 자체가 언제 어디서 변수가 발생할지 모를 뿐 아니라 개별 정부나 중앙은행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풀어내기도 어려운 문제다. 심지어 이주열 한은 총재도 “‘알 수 없는 불확실성’ 영역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며 “공급 병목이 무한정 지속될 수 없겠지만 언제쯤 해소될지 알 수 없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특히 공급 병목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해운 물류대란은 오는 2023년이나 돼야 해소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지난해부터 글로벌 선사들이 발주한 선박들이 2023년부터 본격 투입되기 때문이다. 해운업 병목현상이 진정되기 전에는 높은 컨테이너 운임이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물가 상승은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에 더욱 가속을 붙게 한다. 한은은 경제 회복과 함께 물가가 급격히 오르고 있는 만큼 금융 불균형 대응을 위해서라도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은은 8월 기준금리를 0.50%에서 0.75%로 0.25%포인트 올렸는데 이달 25일로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 정례 회의에서 추가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미 시장에서는 내년 초까지 기준금리 인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과 함께 대출금리는 빠르게 오르는 양상이다. 9월 가계대출 평균 금리는 3.18%, 일반 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4.15%로 각각 2019년 6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미 연준이 이달 초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에 나선 데 이어 시장 전망대로 내년 하반기에 금리를 인상할 경우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계획도 영향을 받게 될 수밖에 없다.
현 추세가 내년까지 이어진다면 3고는 취약 계층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게 된다. 장바구니는 점차 무거워지는데 내야 할 이자도 많아지고 있다. 금융연구원은 대출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전체 차주 10명 중 1명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5%포인트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DSR이 5%포인트 늘어나면 소득의 5%를 이자로 더 내는 만큼 부담이 커지는 것이다. 특히 자영업자나 취약 차주는 해당 비율이 14.4%, 11.7%까지 높아진다. 단계적 일상 회복인 위드 코로나 시행에도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자영업자나 취약 계층의 어려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는 “잘 움직이지 않는 생산자물가가 급격히 오르면서 소비자물가로 전가되는 속도도 빨라지고 있기 때문에 가계 부담은 더 커질 것”이라며 “가계 입장에서는 소득은 정체돼 있는데 물가는 오르고 금리 인상으로 인한 이자 부담도 증가해 내수가 생각보다 더디게 회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전일 ‘하반기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신속한 백신 보급이 이뤄지고 방역 조치도 완화되고 있는 상황임을 고려할 때 내년 재정 정책은 경기 부양보다는 피해 계층에 대한 선별적 지원과 경제구조 전환 등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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