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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에 힘 잃은 자유무역…'中 중독증' 벗어나 '우군' 확보해야

[재편되는 글로벌 공급망-WTO체제 붕괴

<상> 무역 각자도생의 시대

美 '中 포위망' 강화…'힘의 논리'로 통상판 대격변

印尼 등 중진국들도 WTO 규정 위반 아랑곳 안해

수출의존 큰 韓, 美·대만 손잡고 '디지털연합' 시급





개방적이고 공정한 무역 질서 복원을 외치지만 세계무역기구(WTO)로 대표되는 다자주의는 중국의 패권주의와 미국의 일방주의에 힘을 잃고 있다. 오히려 어느 한쪽에 줄을 서야 하는 선택의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그나마 우리에게 다행인 것은 미국이 트럼프 식 일방주의에서 벗어나 중국에 대응한 포위망을 구축하며 동맹국 간의 협력을 바탕으로 한 선택적 다자주의로 회귀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중국이 취한 ‘요소 수출제한’ 조치는 우리 통상 전략과 공급망 재편에 한층 속도를 붙게 하고 있다. 정부는 지금까지 중국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던 전략에서 탈(脫)중국을 통해 ‘가격 안정화’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공급망 재편을 준비 중이다. 다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무역의존도가 여타 국가 대비 절대적으로 높은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이 같은 공급망 재편이 경상이익 등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다양한 공급망 확보는 그만큼 비용이 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4일 통상 업계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해 “자유무역 복원과 글로벌 공급망 안정을 위해 WTO 개혁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지속 가능 성장을 위해 개방적이고 공정한 규칙에 기반한 글로벌 교역 체제가 지속되고 더욱 발전돼야 할 것”이라며 자유무역 필요성을 역설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자유무역이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 글로벌 규약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무역의존도는 지난 2019년 63.33%로 중국(32.05%), 일본(28.17%), 호주(30.44%)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으며 글로벌 통상 질서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19.32%)과 비교해서는 세 배 이상이다. 글로벌 자유무역이 위축될 경우 내수시장이 어느 정도 버팀목 역할을 해주는 여타 국가들과 달리 우리는 직접적인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바람과 달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한층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흐름은 WTO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일본 정부는 대만 TSMC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공장의 자국 내 유치를 위해 전체 투자비 8,000억 엔(약 8조 2,600억 원)의 절반인 4,000억 엔을 지원하는 등 반도체 공급망 내재화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일본 내에서는 “자유무역 기조를 왜곡할 수 있는 보조금 지급으로 WTO 규칙 위반 논란이 일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지만 일본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



미국은 국가안보 위협 시 외국산 제품의 수입을 긴급 제한하거나 고율의 관세를 매길 수 있도록 한 무역확장법 232조를 활용해 ‘중국 포위망’을 강화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단행된 유럽연합(EU) 수입산 철강에 대한 25%의 관세 부과 결정을 철회했으며, 관세 부과 대신 수출량 제한 쿼터를 받고 있는 한국에도 이를 빌미로 ‘우리 편에 서라’는 신호를 노골적으로 보내고 있다. 무역확장법 232조가 규정한 ‘국가안보 위협’에 대한 부분이 자의적으로 해석 가능한 만큼 WTO 규정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지만 미국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중진국들 또한 WTO를 무시하는 모습이다. 세계 팜유 생산의 55%가량을 차지하는 인도네시아는 팜유를 화장품 같은 파생품으로 가공한 뒤 팔기 위해 팜유 수출 중단을 검토중이다. 이 또한 WTO 규정 위반이지만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WTO에 제소당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천연자원을 제품으로 만들어 파는 것은 우리의 권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WTO의 분쟁 해결 기능은 사실상 2년여 전부터 마비된 상태다. WTO의 분쟁 해결 절차에서 대법원 역할을 하는 상소 기구의 상소 위원 공석 사태가 미국의 계속되는 보이콧으로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지난달 WTO 본부를 방문해 “WTO의 분쟁 해결 과정은 오래 걸리고 비싸며 논란이 많은 소송과 동의어가 됐다”며 WTO 개혁을 주문하기도 했다.

WTO의 역할 축소에 우리 정부는 지난해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가입에 이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추진 등에 나서고 있지만 보다 더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WTO가 과거와 같은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계속해서 변화하는 무역 환경에 맞춰 신규 무역 규범도 만들고 무역 분쟁 발생 시 해당 규범에 기초해 조치를 취하는 등의 행동을 해야 하는데 이 두 가지 모두가 사실상 중단돼 있다”며 “결국 WTO 체제가 무너지면 강대국의 ‘힘의 논리’에 따라 통상 질서가 운영되기 때문에 한국 입장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결국 디지털을 중심으로 미국이나 대만과 같은 디지털 강국과 손잡고 디지털 통상 연합을 만드는 식으로 미래 통상 질서에 일조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여러 나라들이 공동으로 협정을 맺는 방식이 글로벌 통상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지역별 통상 협정에 빠르게 가입해 ‘우군’을 늘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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