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하루 1~2%씩 널을 뛰면서 투자 전략을 잡기 어려운 요즘입니다.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 등 ‘반도체 투톱’도 지수와 함께 롤러코스터를 타며 투자자들에게 멀미를 선사하고 있죠. 돌아온 외국인들이 집중적으로 주식을 사들이고 있지만, '7만전자'에 지쳐버린 개인들은 무섭게 팔아치우고 있으니 뚜렷한 추세를 파악하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반도체 대형주들의 운명을 가를 메모리 반도체 업황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걸까요. 전문가들의 올해 상반기만큼의 호황은 아니겠지만, 차세대 D램(DDR5)으로의 기술 전환기를 맞아 견조한 수요를 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최근 증권가에서 "반도체주의 겨울이 예상보다 길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의 리포트들이 쏟아지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과연 메모리 반도체는 올 하반기 다운사이클을 끊어내고 따듯한 봄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이번 주 ‘선데이 머니카페’에서는 반도체주 업황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메모리 반도체 겨울 예상보다 짧다”…가격 하락세 진정
차가운 얼음바다에 갇혀 있던 D램 시장에 최근 훈풍이 불고 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 11월 PC용 D램(DDR4 8Gb 기준) 평균 고정 거래 가격은 3.71달러로 지난 10월과 같은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고정거래가격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제조사들이 고객사에 제품을 공급할 때 미리 계약하는 도매가격입니다. 시장 업황을 판단하는 주요 지표죠. 업계에서는 이 가격이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들어 내년 가격 반등이 이뤄지지 않을까 기대하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지난 10월에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내년 상반기까지 하락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는데 예상보다 일찍 하락세가 멈췄기 때문입니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통상 3개월 단위로 움직이는 D램 고정거래가격의 경향을 고려했을 때 내년 1분기부터 하락세가 진정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고 짚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시각들도 바뀌고 있습니다. 지난 8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겨울을 전망했던 모건스탠리는 “다운사이클(가격 하락) 기간이 당초 전망보다 짧아질 것”이라며 반성문(?)을 썼죠. 미국 시티그룹도 지난달 “D램 가격 조정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내년 1분기에 D램 수요가 늘어날 전망”이라고 분석했죠.
국내 반도체 투톱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수급에서도 긍정적인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외국인은 지난달 삼성전자를 8,612억원어치 순매수했고, 기관은 2,167억원을 사들였습니다. 같은 기간 개인이 1조306억원을 순매도한 것과 대조적입니다. SK하이닉스를 향한 외국인과 기관의 매수세는 더욱 돋보였습니다. 외국인은 1조133억원, 기관은 4,715억원어치의 주식을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수요 방어할 게임체인저 차세대 D램 데뷔 예고
공급 과잉과 부족 사이를 줄타기하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는 믿는 구석이 있습니다.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인 차세대 고속 메모리반도체인 'DDR5 D램'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이 예고되고 있습니다. DDR은 더블 데이터 레이트(Double Data Rate)의 약자로 D램 규격을 말합니다. 뒤에 붙는 숫자가 높을수록 성능이 개선됐다는 뜻이죠. 현재 주력 제품은 2013년 출시된 DDR4입니다. DDR5는 전작보다 속도가 두 배 이상 빠르며 전력 효율성도 30%가량 향상됐습니다. 데이터 센터의 DDR4를 DDR5로 교체하면 연간 최대 1테라와트시(TWh=시간당 10억kW)의 전력을 아낄 수 있습니다. 이는 지난 한 해 서울 강북구에서 사용한 전력량을 웃도는 수준입니다.
전문가들은 이 고성능 D램이 올해 4분기 PC 시장, 내년 상반기 서버시장에 적용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모든 응용처에서 본격적인 DDR5 D램의 세대교체가 일어나는 것이죠.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D램 시장에서 DDR5 출하량 비중은 올해 0.1%에서 2022년 4.7%, 2023년 20.1%로 급증해 2025년 40.5%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산합니다. 반면 DDR4는 2022년 49.5%로 정점을 찍은 후 비중이 감소해 2025년에는 8.5%로 줄어들 전망입니다.
특히 인텔이 지난 4일 DDR5를 지원하는 최초 PC용 중앙처리장치(CPU)인 ‘엘더레이크’를 출시하며 PC 시장에서도 DDR5 D램으로 세대교체가 가속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인텔은 내년 상반기엔 ‘사파이어 래피즈’도 출시할 예정입니다. 서버 시장에서도 DDR5 도입이 요구가 커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코로나19로 서버 시장의 지속적인 성장이 전망되는 가운데 대용량의 반도체가 24시간 가동돼야 하는 서버 시장 특성상 고성능·고용량·저전력 D램에 대한 수요가 큰 상황입니다.
DDR5 양산이 D램 가격 하락을 방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습니다. 반도체 기업의 생산 역량이 DDR5로 집중되면서 DDR4 생산량이 줄면 공급 과잉 우려가 해소되고 인텔 등 글로벌 기업의 서버 교체 시기가 다가오면서 가격 협상력도 이전보다 커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옵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클라우드(가상 서버) 업체와 델·HP 등 PC 업체들의 4분기 D램 주문량은 기존 예상치를 30%가량 웃돌 전망”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수빈 대신증권 연구원도 "클라우드 서비스 사업자(CSP)의 서버 D램 재고 수준이 4분기 7주~9주 수준으로 전 분기 대비 하락했다"며 "재고를 소진했다는 것은 CSP의 서버 빌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습니다.
DDR5 D램 사용처 역시 PC, 서버, 전기차, 모바일 등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도 최근 이런 추세에 맞춰 업계 최초로 극자외선(EUV) 공정을 적용한 14나노미터(1나노=10억분의 1m) 모바일용 D램(LPDDR5X)를 내놨고, 차기 스마트폰 제품에 신형 D램을 적용할 예정입니다.
물론 오미크론 변이 확산 등과 같은 변수가 있지만,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반도체주에 기대는 심리 또한 커지고 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 업황 부진 악재가 주가에 이미 충분히 반영된 데다 반도체 업종의 속성상 주가는 업황에 6개월가량 선행하기 때문입니다. 또 연말 대주주 양도세 관련 계절적 이벤트가 있는 상황에서 중소형주 보다는 그간 부진했던 대형주 중심의 반등 기대를 높이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죠. 투자 '피난처'를 찾고 있다면 반도체가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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