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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종부세와 르상티망

권혁준 경제부 기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인 약자가 강자에 대해 갖는 질투·시기심을 ‘르상티망(ressentiment)’이라는 용어로 정리했다. 르상티망 속 약자는 ‘탐욕스런 부자’와 같은 부정적 프레임을 강자에 덧씌워 약자 본인을 ‘선’으로 포장한다. 이런 본성 때문이지 대다수 사람들은 재벌들이 법정이나 국정감사에서 곤욕을 치르면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솝우화 속 여우가 높이 달린 포도를 두고 “시어서 못 먹을 것”이라고 자위하는 것도 한 예다.

부동산 폭등 속 르상티망은 주택 보유자에게 전도된다.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급등한 집값에 속출한 ‘벼락거지’의 르상티망이다. 다주택자는 투기꾼이기 때문에 ‘종부세 폭탄’을 맞는 것이 합당하고, 집값이 수억 원 올랐으니 수천만 원의 종부세 정도는 당연하다는 르상티망에 세제 자체의 합리성에 관한 논의는 지워진다.



현행 종부세가 위헌 여지가 다분하다는 비판은 계속해서 나온다. 징벌에 가까운 최고 세율은 야당이 배제된 채 의결됐고 세 부담을 급격히 올리는 공시가 인상은 정부에 의해 이뤄져 조세법정주의를 위반한다. 실수요자나 마찬가지인 일시적 1가구 2주택자를 구제하지 못하고 수입이 없는 노인층을 곤란하게 만드는 등 제도의 허점도 상당하다. 하지만 르상티망에 휩싸여 합리적 논의 자체가 ‘배부른 자들의 탐욕’ 정도로 치부된다.

98%는 상관없는 세금이라는, 1주택자는 몇십만 원만 낼 뿐이라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기재부 고위 관료들의 발언은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실망스럽다. 이 같은 발언들은 제도가 우리 사회에 왜 필요한지,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 등을 설파하고 반발하는 납세자를 납득시키기보다는 르상티망을 자극해 국민을 갈라치기하는 데 그쳤다.

5년여간 다주택자를 ‘악인’으로 몰아가며 펼친 각종 정책은 카타르시스를 줬을지언정 거대한 시장의 왜곡을 남겼다. ‘종부세 폭탄’ 또한 수도권 주택 공급 부족 속 세입자에게 떠넘겨질 가능성이 높다. ‘악당’으로 몰린 다주택자의 분노 또한 켜켜이 쌓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균열을 메꾸기는커녕 더 벌리는 모습이다. 정작 홍 경제부총리 본인도 ‘본의 아닌 다주택자’로 곤욕을 치르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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