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서울 아파트 가격이 하락 직전 수준에 이르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주택 경기를 판단하는 주요 지표인 청약 경쟁률은 더욱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 규제로 재고 주택의 매매 수요가 억눌려 있을 뿐 내 집 마련 수요는 여전히 높다는 방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3일 부동산R114에 따르면 서울의 아파트 청약 평균 경쟁률은 올해 상반기 125.2 대 1에서 하반기 231.3 대 1로 급등했다. 서울의 아파트 연간 청약 경쟁률이 세 자릿수를 기록한 것은 부동산R114가 관련 데이터를 집계한 지난 2000년 이후 처음이다. 역대 최고였던 지난해(88.3 대 1) 기록을 훌쩍 넘긴 것이다.
전국으로 봐도 청약 열기는 하반기 들어 더욱 달아올랐다. 전국의 아파트 청약 평균 경쟁률은 올 상반기 18.6 대 1에서 하반기 23.2 대 1로 늘었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0개 시도의 경쟁률이 하반기 들어 더 높아졌다. 부산은 같은 기간 28.1 대 1에서 49.6 대 1로, 강원도는 4.4 대 1에서 24.5 대1로, 경상남도는 9.3 대 1에서 29.8 대 1로 높아졌다. 확연한 감소세를 보인 곳은 대구(7.2 대 1→2.6 대 1)와 전라북도(22.83 대 1→10.3 대 1), 제주도(14 대 1→3.5 대 1) 정도다.
전문가들이 주택 경기를 판단하는 주요 지표로 꼽는 분양 실적이 하반기 들어 더욱 열기를 띠는 만큼 정부의 집값 전망이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는 올 6월 고점론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서울 집값이 하락 직전에 있다”며 하락론을 주장하고 있다.
실제 올 하반기 들어 각 지역에서 역대 최고 청약 경쟁률 단지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충남 아산시 탕정면 ‘아산탕정지구2-A3블록 탕정역 예미지’는 7일 진행된 1순위 청약에서 410가구 모집에 13만 3,361명이 지원해 평균 경쟁률 325.3 대 1을 나타냈다. 단일 단지 기준으로 충남 지역 역대 청약자 수 1위다. 10월 1순위 청약을 받은 서울 강동구 ‘e편한세상 강일 어반브릿지’는 389가구 모집에 13만 1,447명이 몰려 337.9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서울 역대 최대 청약 경쟁률을 경신했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서울 등 주요 지역의 경쟁률이 높아지는 점을 고려하면 매매 수요는 관망세라 하더라도 내 집 마련 수요 자체는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이라며 “청약의 경우 매매 시장보다 낮은 가격으로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어 적극적으로 수요자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지역 매매 시장에서 나타나는 관망 분위기 역시 오히려 시장 안정 요인이라기보다는 불안 요소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윤주선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는 “매매 수요 자체가 줄었다기보다 대출 규제에 따라 억제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면서 “억눌린 수요가 일시에 분출할 경우 서울은 물론 수도권 전반으로 시장 불안이 퍼져나갈 수 있는 만큼 하락 전망을 하기보다 수요에 부합하는 공급을 정책 우선순위로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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