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그룹 ‘드리프트’는 랄프 나우타 (Ralph Nauta)와 로네케 고르디진(Lonneke Gordijn)로 이뤄진 혼성듀오다. 2007년에 결성된 이들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기반을 두고 조각·설치·퍼포먼스 등 다양한 멀티미디어 작업을 해오고 있다. 드리프트 작업의 기본 뼈대는 인간 사이의 연관 관계를 규명하는 일이다. 작업의 대부분은 자연의 형상에 기반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인간이 실제 머무는 공간에 설치·음향·조각 등 다양한 형태의 멀티미디어로 설치된다.
드리프트의 초기 작업을 보면 디자인에 가까운 기능적인 작업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실제 이들은 움직이는 조명 시리즈인 ‘샤이라이트(SHYLIGHT)’로 큰 주목을 받았다. 꽃처럼 보이는 이 조명 작업은 꽃잎이 폈다 지는 움직임을 시각화했다. 민들레 씨앗을 LED 조명에 하나씩 붙여만든 ‘댄딜라이트(DANDELIGHT)’ 시리즈는 드리프트를 상징하는 대표작이다.
올 가을부터 이번 주말까지 뉴욕에서 드리프트의 전시가 두 곳에서 열렸다. 지난 4월 프리즈 아트페어가 개최된 더 쉐드 (The Shed)에서 ‘깨지기 쉬운 미래’ (Fragile Future)이라는 제목으로 드리프트의 전시가 열렸다. 드리프트는 이 공간에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환경문제를 다루고자 했다. 그래서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라는 공간에 대해 재인식할 수 대다수의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메인 홀에 전시되어 있는 복합 설치작업인 드리프터(DRIFTER)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드리프터’는 공중에 떠 있는 거대한 콘크리트 블록이 정해진 루트에 따라서 서서히 움직이는 설치 작업이다. 짙은 회색빛을 띄는 차가운 콘크리트 덩어리의 움직임은 정적인 공간에 동적인 요소를 불어 넣으며, 관객으로 하여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 공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 다른 전시 공간인 페이스 갤러리에서는 ‘유물론: 과거, 현재, 미래’ (Materialism: Past, Present, Future)이라는 테마로 전시가 열렸다. 이 전시에서는 기존 ‘오브제’의 개념을 뒤집는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다. 기존 오브제(사물)들이 천연 재료의 가공을 통해서 만들어진다면, 드리프트는 그것과는 반대로 ‘이미 만들어진 오브제’를 원래 천연 재료의 상태로 역으로 분해하여 시각화한 작업들을 선보였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1980 Beetle, 2021’이라는 작품을 맞이하게 된다. 가로 길이가 3m가 넘는 이 거대한 작업에는 다양한 물질과 색깔의 큐브 형태 덩어리들이 평면 위에 짜임새 있게 올려져 있다. 각 덩어리들은 폭스바겐사가 1980년에 생산한 자동차 비틀에 사용된 철, 구리, 알루미늄, 아연 등과 같은 산업적인 재료들이다. 얼핏 보면 20세기 기하학 추상의 대가로 불리는 말레비치와 몬드리안의 추상화가 입체화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사물의 재료인 물질 자체를 추상적으로 시각화했다는 점에서 독특한 차별성을 확인할 수 있다.
같은 층 전시장 한 편에서는 증강 현실 작업인 ‘Block Universe, 2021’도 볼 수 있다. 벽 중앙에는 태양을 상징하는 붉은 오렌지색 조명이 붙어 있다. 지정된 아이패드를 가지고 조명을 중심으로 화면을 대면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태양계의 모든 행성들이 추상적인 큐브 형태로 아이패드 화면 위에 나타난다. 증강현실이라는 기술은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행성인 지구를 넘어서 다른 태양계의 행성들의 존재를 가상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 더 나아가 다른 행성의 존재를 인식함으로써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공간을 넘어선 시, 공간을 체험하게 한다. 앞서 언급한 더 쉐드에 전시된 ‘드리프터’와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번에 기획된 전시는 기존의 공간, 사물을 다시 바라보게끔 하는 주제로 선보였다. 최근 록펠러센터는 영구 컬렉션으로 드리프트의 작품 ‘AMPLITUDE’를 소장했다. 페이스갤러리의 전시는 18일, 더 쉐드의 전시는 19일까지 열렸다. /뉴욕=엄태근 아트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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