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철강 역사의 산실이자 경제 발전의 초석이 된 포항 1고로가 48년 6개월여 만에 그 임무를 완수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포스코는 29일 경북 포항제철소에서 1고로 종풍식을 가졌다고 밝혔다. 종풍(終風)이란 수명이 다한 고로의 불을 끄는 것을 가리킨다. 김학동 포스코 사장은 “1973년 6월 9일 첫 출선 당시 박 명예회장이 직원들과 함께 1고로 앞에서 만세를 외치며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아직도 선한데 벌써 종풍을 맞다니 만감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그는 “변변한 공장 하나 없던 변방의 작은 국가가 짧은 기간 내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것은 포항 1고로와 직원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격려했다.
포항제철 설립이 한창 추진되던 지난 1969년 박태준 당시 포항제철 사장은 직원들에게 “조상의 혈세로 짓는 제철소 건립 실패는 죄를 짓는 일”이라며 “실패하면 ‘우향우’ 해서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자”고 했다. 일제강점기 피의 대가로 얻은 대일청구권 자금 8,000억 원 중 1,200억 원이 투입된 포항제철소 조성과 1고로 건립이 실패하면 조상 볼 낯이 없다는 것이었다.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우향우’ 정신이 통한 것일까. 포항 1고로는 1973년 6월 9일 첫 쇳물을 무사히 생산해냈다.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철강을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자체 생산해낸 순간이었다. 철강 업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최초의 고로는 1943년 일제가 지은 삼화제철소지만 포항 1고로는 우리 힘으로, 그것도 현대식 용광로 공법을 처음 적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했다.
조선·車·가전 글로벌 호령 ‘일등공신’
포항제철소 1고로는 우리 경제의 밑거름이 됐다. 조선·자동차·가전 등 국내 제조업이 단기간 내 비약적인 성장을 거두는 데 안정적이고 품질 좋은 철의 공급이 뒷받침되지 않았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포항 1고로는 국가 경제성장을 뒷받침한 공로를 인정받아 ‘민족 고로’ 또는 ‘경제 고로’라고 불려왔다. 철강협회는 국내 최초·최장수 고로로서 포항 1고로의 상징적 의미를 기념하며 첫 출선일인 6월 9일을 ‘철의 날’로 제정하기도 했다.
1고로의 성공은 우리나라가 철강 강국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1고로 이후 우리나라에는 총 11개의 고로가 추가 신설돼 총 12개의 고로가 가동됐으며 이 가운데 9기는 포스코가 보유하고 있다.
포항 1고로가 반세기 가까이 생산해낸 쇳물의 양은 총 5,520만 톤에 달한다. 30만 톤급 초대형 유조선 1,380척을 건조하거나 중형 자동차 5,520만 대 생산 또는 인천대교 1,623개를 건설할 수 있는 양이다.
내용적 1,660㎥의 소형 고로인 1고로는 최근 준공되는 5,500㎥ 이상의 초대형 고로와 비교해 생산성이나 조업 안정성 면에서 불리한 면이 있었다. 포스코는 1고로의 상징성을 감안해 2차례 개수 공사로 생명을 연장했지만 더 이상의 수명 연장은 어렵다고 판단, 이날 마지막 출선을 끝으로 생산을 중단했다.
포스코는 향후 1고로의 역사적 가치와 의의를 고려해 고로 내부 냉각, 철거 작업 등을 거쳐 ‘포항 1고로 뮤지엄’으로 개조한 뒤 일반인들에게 공개할 계획이다.
포스코, 수소환원제철 도입 등 변신
포스코는 1고로 종풍에 따른 생산량 감소를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포스코의 한 관계자는 “1고로 중단으로 연간 100만 톤 규모의 생산량이 감소하지만 남은 8개 고로의 증산을 통해 감소량은 소폭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1고로의 생산 중단은 우리 철강업이 ‘탄소 중립’이라는 새로운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실제 우리 철강 업계는 탄소 배출이 많은 고로 신설을 중단한 채 파이넥스 공법을 확대하고 수소환원제철 기술 등을 연구하고 있다. 또 탄소 중립 중간 단계로 저탄소 제품 요구에 대응 가능한 전기로 2기를 오는 2027년까지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또 2050년까지 수소 700만 톤 생산 체제를 구축해 글로벌 톱10 수소 생산 플레이어로 도약할 계획이다. 전기차 시대를 맞아 초고강도 강판인 기가스틸 생산 확대에도 나섰다.
포스코는 철강을 넘어 배터리 등 미래 소재 산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포스코는 2차전지 핵심 원료인 니켈·리튬·흑연 등에 대한 해외투자를 확대하고 있으며 자회사인 포스코케미칼은 이들 원료를 바탕으로 양극재와 음극재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nhkimchn@se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