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자산운용사의 대표가 최근 불붙은 해외 주식 투자를 두고 “개인투자자들이 개안(開眼)했다”고 평가했다. 코스피가 십수년간 박스권에 갇혀도 볼멘소리로 한탄할 뿐 나라 밖 기업에 계좌를 맡기지 못했지만 해외로 시야를 본격 넓히면서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탈피했다는 얘기다. 해외 주식 거래 규모가 2배 폭증하고 순매수액도 코스닥의 3배에 육박하면서 올해 개인의 투자 공식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30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이달 29일까지 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 결제 대금은 465조 원으로 지난해(235조 원) 대비 97.8% 급증했다. 해외 주식 매매액의 92.9%가 미국에 집중됐고 홍콩(4.1%), 중국 본토(1.3%), 일본(0.7%) 순서로 관심이 컸다. 올 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 순매수액은 26조 8,000억 원으로 개인의 코스닥 순매수액(10억 7,000억 원)의 두 배를 훌쩍 웃돌았다.
올해 서학개미들이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해외 주식의 대명사가 된 테슬라다. 올해 개인은 테슬라를 3조 4,000억 원어치 순매수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위를 사수했다. 이외 애플·알파벳·엔비디아·메타·마이크로소프트 등 지난 10년간 미국 시장을 주도한 대표 기술주가 서학개미 순매수 상위 2~6위에 올랐다. 아울러 미래 산업으로 각광받는 전기차(테슬라·리비안·루시드), 메타버스(메타·엔비디아·유니티) 관련 유망 기업에도 적극 베팅한 것도 특징이다.
남다른 수익률도 해외 투자를 자극한 요소다. 연초부터 지난 29일까지 국내 투자자가 가장 많이 사들인 15개 해외 종목의 올해 평균 수익률(상장지수 상품 제외, 신규 종목은 상장일 시가 기준)은 33.7%로 집계됐다. 개인의 코스피 매수 상위 15개 종목이 올 들어 평균 5.0% 하락한 것과 대조적이다. 메타버스 성장의 수혜주로 꼽히는 그래픽처리장치(GPU) 1위 기업 엔비디아가 128.8%가량 뛰며 매수 상위권 중 가장 높은 수익률을 자랑했고 테슬라(48.8%)·애플(38.6%)·알파벳(69.9%) 등도 두 자릿수 성과를 선사했다. 다만 테슬라 대항마로 거론되며 지난달 상장한 미국 전기차 업체 리비안은 한때 170달러를 돌파했다가 현재 100달러 아래로 추락하며 손실을 안겼다.
쏠쏠한 재미를 본 국내 투자자의 해외 투자 행렬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한수 자본시장연구위원은 “해외 주식 투자 확대는 관심 증대, 거래 편의성이 반영된 결과”라며 “다만 개인은 투기적 성향이 높고 환 위험에도 노출돼 향후 투자자 보호 범위 및 규정 등 제도 보완을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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