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만큼은 확실히 잡겠다”며 호언장담하던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10개월을 남긴 올해 5월이 되어서야 “부동산만큼은 할 말이 없다”며 정책 실패를 자인했다. 그 즈음 취임한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지 못해 송구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이기에 바빴다.
임기 말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성적표는 사실상 최악이다. KB국민은행 월간 주택 매매가격 시계열 통계에 따르면 올해 전국 주택 가격은 지난해 말 대비 14.97% 올랐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직후인 지난 2002년(16.43%) 이후 19년 만의 최고 상승 폭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 이후 전국 주택 가격 상승률은 30.22%에 달한다. 실제 매매 사례를 보면 4년여간 서울에서 아파트 값이 두 배(100%) 이상 뛴 곳도 드물지 않다. 그간 26차례나 쏟아낸 부동산 정책이 무색하다.
집값이 뛰는 동안 무주택자들은 “이러다가는 영원히 집을 못 살지도 모른다”며 앞다퉈 내 집 마련에 나섰다. 기존에 주택을 보유했던 이들도 자산 증식을 위해 매수 대열에 동참했다. 2030세대들까지 나서 ‘영혼까지 끌어 모으며(영끌)’ 아파트가 안 되면 다세대·연립(빌라)이라도 샀다. ‘패닉 바잉’ ‘벼락 거지’와 같은 부동산 관련 신조어가 대거 등장했다.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것은 집값 상승의 원인을 엉뚱한 곳에서 찾으며 잘못된 해법만 내놓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부터 주택 공급은 충분한데도 다주택자 등 투기꾼들의 사재기 때문에 집값이 오른다고 봤다. 이에 따라 공급은 외면한 채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 폭탄 등 징벌적 규제만 쏟아냈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를 부활시켰고 종합부동산세율을 인상했다.
최근 민간 연구 기관인 주택산업연구원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실책을 뼈아프게 꼬집었다. 지난 10년간 주택 가격 변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변수를 살펴봤더니 주택 수급이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전국의 주택 수요량 대비 공급량이 38만 가구나 부족해 집값이 올랐다는 분석이다. 주산연은 “정부가 주택 시장 안정에 실패한 것은 수요·공급량 예측 실패와 이념에 치우친 비전문가들에 의한 정책 주도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국민들의 불만도 하늘을 찌른다. 여론 조사 기관 알앤써치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문 대통령의 최대 실책으로 ‘부동산 정책(41.8%)’이 꼽혔다. 두 번째 잘못으로 선정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10.2%)’보다 무려 4배 이상 높은 응답률이다.
‘부동산 민심’이 들끓다 보니 내년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들은 경쟁하듯 문재인 정부와 선을 긋는 부동산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조차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공시가격 재검토, 실수요자 취득세 감면 등을 내놓았다. 문재인 정부와 발맞춰 민주당이 그동안 보여왔던 행보를 완전히 뒤집는 ‘자기 부정’이나 마찬가지다. 징벌적 보유세 등에 분노한 국민들의 마음을 잠시 누그러뜨릴지언정 중장기 집값을 안정시킬 묘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차기 정권에서는 오히려 문재인 정부가 집권 말기에 뒷북으로 쏟아낸 공급 정책의 재정비 방안과 중장기적인 부동산 세제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 지난해 8·4대책과 올해 2·4대책에서 제시한 공급 목표는 가히 ‘물량 폭탄’급이다. 실현 가능성이 의문시되기는 하지만 현실화한다면 10년 후에는 집값 폭락의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당장 눈앞의 표 공략에 급급한 마음은 이해되나 후보들이 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다면 수요를 염두에 둔 중장기 공급 대책 마련이 급선무다. 정책이 아닌 정치가 시장을 망치는 ‘부동산 잔혹사’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