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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월마트가 지금 한국에 있다면

노희영 생활산업부장

美 월마트, 온라인 시대에도 매출 1위

온·오프라인 결합 옴니채널 전략 성과

아마존의 최대 위협으로 평가될 정도

'기업회생' 홈플러스 전략 실패와 대조

유통법 등 규제도 대형마트 성장 저해





온라인 쇼핑 시대가 열리면서 오프라인 유통 기업들이 몰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집콕’ 하던 시기와 맞물려 e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들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이 같은 전망은 더욱 득세했다. 하지만 세계 최대 ‘유통 공룡’ 월마트는 미국 포춘지가 매출액 기준으로 선정하는 글로벌 500대 기업 1위 자리를 13년째 굳건히 지키며 이 같은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켰다. 지난해 4분기 처음으로 미국 최대 e커머스 아마존에 분기 매출 1위 자리를 내주기는 했지만 연간으로는 6810억 달러(약 992조 원)의 매출로 아마존과 430억 달러(약 62조 원)의 격차를 내며 1위를 유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보도에서 월마트를 ‘아마존이 직면한 최대 위협’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월마트가 미국 유통시장의 절대 강자가 될 수 있었던 건 온·오프라인을 결합한 옴니 채널 전략, 비용 절감을 위한 기술 투자, 영업이 자유로운 규제 환경 등 3박자를 갖췄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고객이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매장에서 가져가는 ‘픽업 서비스’를 시작으로 온라인 주문 상품을 라이더가 배달하는 ‘스파크’, 자율주행차 배송, 드론 배송 등 오프라인에 온라인 요소를 가미한 다양한 서비스들이 고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최근에는 의약품 배송 서비스까지 시작했다. 덕분에 월마트의 전체 매출 가운데 e커머스 매출 비중은 18%까지 치솟았다. 1년 전보다 3%포인트, 5년 전보다는 11%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월마트의 이 같은 행보는 국내 오프라인 유통 업체들과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월마트가 본업인 오프라인 마트 경쟁력을 지키면서 미국 전역에 깔린 매장과 온라인을 접목해 관련 서비스를 확대한 것과 달리 국내 업체들은 쿠팡 등 e커머스를 따라잡기 위해 온라인 플랫폼에 집중 투자했다가 낭패를 봤다.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 물류 효율화 등에 투자하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월마트는 2021년에만 공급망 자동화에 140억 달러(약 20조 원)를 투입해 주문당 순 배송 비용 40%를 감축했다.

e커머스와 정면 대결에 나섰던 국내 오프라인 유통 업체들은 결국 경쟁력 차별화에 실패하고 급기야 온라인 유통시장에 주도권을 내주게 됐다. 산업통상자원부의 ‘2024년 연간 유통 업체 매출 현황’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체 유통 업체 매출 가운데 온라인 비중이 50.6%로 절반을 넘어선 반면 대형마트 비중은 11.9%에 그쳤다. 실제로 롯데마트는 2020년 6조 369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한 후 매년 줄어들면서 지난해에는 5조 3760억 원까지 감소했다. 같은 기간 이마트는 매출이 소폭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3230억 원에서 1290억 원으로 반 토막 났다. 최근 기습적으로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간 홈플러스 역시 매출이 2020년 6조 9660억 원에서 2023년 6조 9320억 원으로 제자리걸음을 하며 영업 적자를 냈다.



국내에서 2012년 본격 시행된 유통산업발전법 역시 이름과는 달리 대형마트의 성장을 저해하는 족쇄로 작용했다. 전통시장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오전 10시부터 자정으로 제한하고 월 2회 의무 휴업을 하도록 한 것이다. 의무 휴업일과 영업 제한 시간에는 온라인 주문 배송 서비스도 할 수 없다. 전통상업보존구역 반경 1㎞ 내 출점도 불가능하다. 홈플러스의 영업 실적이 악화된 배경으로 대주주인 사모펀드(PEF) MBK파트너스의 부실 경영도 꼽히지만 10년 넘게 이어진 대형마트에 대한 불합리한 규제 탓으로 돌리는 목소리도 크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 유통시장은 ‘글로벌 유통 업체’의 무덤이라고 불릴 정도로 토종 대형마트들이 경쟁력을 갖췄었다. 글로벌 매출 1위 기업인 월마트조차 1998년 한국에 진출했다가 2006년 철수했을 정도였다. 만약 월마트가 지금까지 한국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면 과연 미국에서처럼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유통산업발전법을 비롯한 각종 규제에 손발이 묶여 온·오프라인을 결합하고 자율주행차나 드론으로 제품을 배송하는 유통 혁명은 시도조차 못 하지 않았을까.

노희영 생활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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