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이 올해부터 주주대표소송을 적극적으로 제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면서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주주대표소송을 통해 주주가치를 제고한다는 입장이지만 기업들은 “명목상 주주가치를 앞세운 실질적 경영 간섭”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10일 경제 단체 7곳이 한목소리로 정부 방침에 반발한 것은 이런 기업들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이다.
경제계는 주주대표소송 의사 결정 주체를 기존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로 변경하는 것은 사실상 소 제기의 문턱을 낮춘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경제 단체들은 “기업들은 전체 연금보험료의 42%를 순수하게 부담하는 직접 이해 당사자”라면서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은 소송 제기 결정을 맡는 주체를 변경하는 결정에 대해 경제계와 사전에 의견을 묻는 절차조차 없었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재원의 절반 가까이를 부담하는 기업의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제 단체들은 국민연금도, 기업도 ‘상처뿐인 승소’를 마주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반대 근거로 꼽았다. 국민의 노후 자금을 위해 기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이 소송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주주대표소송이 일반화된 해외 사례를 볼 때 승소 가능성은 높지 않고 이 과정에서 로펌 선임 비용과 착수금 등으로 헛되이 지출하는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도 거론했다. 주주대표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추락한 기업 이미지를 돌이키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피소 가능성을 우려한 기업들이 적극적인 경영 활동을 회피하면서 장기적으로 기업가치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다수의 국민들이 가입자이자 특정 기업의 주주로서 이중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현재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과 기업 관여 행위만으로도 주주권 행사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도 거론됐다. 주주대표소송이 불필요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주주총회에 총 747회 참석해 3,319개 상정 안건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했다. 이 가운데 국민연금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안건은 537개이며 국민연금 의사대로 안건이 부결된 사례는 10건으로 1.9%에 불과했다. 국민연금이 대다수 주주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의결권을 행사하는 사례가 많다는 뜻이다.
경제 단체들은 △기업 경영이 극도로 위축돼 결과적으로 주주인 국민들이 이중 피해를 볼 수 있고 △미국에서도 헤지펀드가 소송 과정에서 임원과 합의를 보기 위한 압박 도구로서 대표소송을 악용하고 있다는 점 등도 반대 근거로 들었다.
경제 단체들은 △주주대표소송 제기 절차와 결정 주체에 대한 주요 사항을 법률로 규정하고 △주주대표소송의 대상 사건을 특정한 사례로 한정하며 △소송의 실익을 검증할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상장사만 해도 300개사에 달한다”며 “‘장기적인 주주가치 증대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라는 광범위한 목적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만큼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업 임원들이 언제든 주주대표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공포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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