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원자력발전을 포함하는 방안을 두고 고민하는 배경에는 유럽연합(EU)의 움직임이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2일 천연가스와 원자력발전을 녹색산업으로 분류하는 택소노미 초안을 공개했다. 환경부가 지난해 12월 30일 정부의 2050 탄소 중립 시나리오와 맞지 않다며 K택소노미에서 원전을 전격적으로 배제한 지 사흘 만이다. EU는 이달 9일 오는 2050년까지 차세대 원자력발전에 5,000억 유로(약 680조 6,200억 원)를 투자해야 탄소 배출 감축 등 친환경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정애 환경부 장관 역시 소형모듈원자로(SMR)를 K택소노미에 포함하는 데는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냈다. 한 장관은 SMR의 경우 고준위폐기물이 적게 나오는 만큼 민간에서 낮은 이율로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민간에서 SMR을 개발하려면 차입이 필요한데 저금리 투자를 언급한 것은 K택소노미에 SMR을 추가할 수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며 “SMR이 K택소노미에 들어가면 대형 원전도 녹색산업에 포함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한 장관은 K택소노미에 원전 추가 여부에 대해 “사회적으로 충분한 합의·논의를 진행할 것”이라면서도 “EU가 택소노미에서도 원전은 한시적 포함인 데다 여러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고 밝혔다. EU 택소노미에 따르면 원전은 2045년 이전 신규 허가를 받아야 하고 방사성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분할 계획·자금·부지가 있어야 한다. 한 장관은 EU와 택소노미 발표를 두고 사전 정보 공유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EU가 어렴풋이 원전과 액화천연가스(LNG)를 포함하는 것을 놓고 고민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보 공유는 하지 않았다”면서 “우리도 마찬가지로 주체적으로 (K택소노미를) 결정했다”고 했다. SMR의 택소노미 포함 방안 검토를 두고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비과학적인 탈원전 정책의 출구 전략을 찾는 것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분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SMR을 시작으로 대형 원전도 K택소노미 개정안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모두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재개됐는데 원전이 택소노미에서 빠진다면 자금 조달에서 어려움이 발생할 것”이라며 “한 장관이 언급했던 EU 택소노미의 조건을 우리나라에 적용하더라도 계획과 돈은 이미 마련돼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유 교수 역시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고준위폐기물은 같은 전력을 생산했을 때 대형 원전이 오히려 더 적게 나오는 만큼, SMR이 택소노미에 포함될 경우 대형 원전도 포함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올해부터 K택소노미를 시범 운영하고 이를 토대로 수정안을 올해 말 다시 발표할 예정이다. 한 장관은 “제도는 계속 보완할 것”이라며 “1년 동안 몇 개의 시범 사업만 하기 때문에 올해 국민적 합의가 다 돼서 정리가 되면 좋지만 결정이 안 됐을 때는 시간을 두고 보완을 해 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 장관은 기후에너지부 신설에 대해 “지금은 부처 중심의 사고를 할 수밖에 없어서 그닥 의견이 있더라도 안 내는 게 낫다”면서도 “최근 한국행정학회 국회 토론회에서 정부 조직을 아주 세분화해 분파시키면 효과를 내기 어렵고 더 큰 목표를 같이 조합해 나가도록 하는 게 낫다는 의견이 제시된 것으로 안다. (차기 정부)인수위원회가 꾸려지면 과제의 우선 순위와 속도·밀도를 감안해서 개편되리라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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