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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의 아트레터]혼돈의 20세기가 낳은 추상의 선구자 칸딘스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서 회고전 열려

격동의 20세기 초·중반 작업들 한눈에

색채·형태와 인간의 감정 관계 연구

바실리 칸딘스키가 1923년 7월에 완성한 '구성(Composition) 8'. 뉴욕 솔로몬 R.구겐하임 미술관 소장품이다.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지은 뉴욕의 명소 중 하나인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러시아 태생 추상화가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의 회고전 '바실리 칸딘스키:원 주위로(Around the Circle)’ 가 열리고 있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건축적 특징인 나선형 구조를 따라 그의 초기부터 후기작업들이 펼쳐진다. 이 나선형 구조는 복도 자체가 갤러리다. 일반적인 화이트 큐브 형태의 미술관들과 달리, 각 전시관의 구분이 없고 나선형 구조 속에서 작품들을 교차하며 볼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독특하게도 이번 전시의 동선은 칸딘스키가 생을 마감한 프랑스에서의 후기 작업부터 독일 뮌헨에 머물면서 그렸던 초기 풍경화 작업까지 역순으로 구성돼 있다. 19세기 중반에 태어나 20세기 중반에 눈 감기까지 현대사의 격동기를 살았던 칸딘스키는 정치·사회적 환경 때문에 유럽과 러시아를 오갈 수밖에 없었고 각 상황에 맞는 작업을 했다. 이번 전시는 시대, 장소별로 그가 겪었던 ‘고립’이 그대로 반영된 작품들을 보여줌으로써 칸딘스키의 예술적 일대기를 돌아볼 수 있게 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뉴욕 명소 구겐하임 미술관의 나선형 갤러리를 따라 바실리 칸딘스키의 작품들이 전시 중이다.


1896년 30살의 젊은 칸딘스키는 모스크바에서 뮌헨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본격적인 예술가의 활동을 시작한다. 1904년부터 1908년까지는 파트너인 가브리엘레 뮌터와 함께 유럽 곳곳을 여행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칸딘스키의 그림들은 기하학적 도형으로 이루진 정돈된 추상회화들이지만 그의 초기작은 여행하면서 그렸던 풍경화들이 대다수다. 구겐하임 재단이 오래전부터 소장하고 있던 ‘푸른산(Der blaue Berg)’이 대표적이다. 캔버스 중앙의 푸른 산을 기준으로 양옆에는 단풍이 든 노랗고 붉은 나무가 서 있고, 그 밑에는 말을 타고 가는 사람들의 풍경이 보인다. 그림 내부의 각 풍경과 인물들의 윤곽이 거친 붓 터치로 마감된 것과 화려한 원색들의 대비가 역동적으로 시각화된 것이 인상적이다. 강한 색채와 붓 터치를 사용한 앙리 마티스의 그림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바실리 칸딘스키가 1908~09년에 제작한 '푸른 산'.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 소장품이다.


그가 본격 추상회화로 접어들기 시작한 시점은 1910년경이다. 1914년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 유럽의 정서는 사회, 정치적으로 불안했다. 이 시기 칸딘스키는 유럽을 피해 고국인 러시아로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보편적인 미학적 언어를 추구하는 구성주의와 절대주의 아티스트들을 만나 기하학 형태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는 이러한 기하학적인 언어가 인간 심리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믿었다. 이에 러시아에서 지내는 동안 형태와 색채 분석에 관한 교육 프로그램 제작에 많은 공을 기울였다. 이후 발터 그로피우스가 설립한 진보적인 독일 미술학교 ‘바우하우스’에 교수진으로 초빙 받으면서 다시 독일로 돌아간다. 재직 당시 칸딘스키는 점과 선에 기초한 기하학적 요소들을 강조했다. 이러한 기하학적 요소들에 대한 칸딘스키의 연구는 다양한 색채와 기하학 형태가 혼합된 칸딘스키의 독창적인 시각언어가 되기 시작한다.

바실리 칸딘스키의 1926년작 '몇 개의 원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소장품.




1920년대에 들어서면 우리에게 익숙한 칸딘스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전시된 1926년작 ‘몇 개의 원들(Einige Kreise)’이 좋은 예다. 작품 제목대로 각기 다른 색을 가진 원들이 검은색 바탕에 배열돼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디테일한 표현들이 눈에 띈다. 바탕을 동일한 검은색으로 처리했어도 무광과 유광으로 질감을 각각 다르게 표현했다. 원들이 서로 겹쳐져 있는 부분에는 기존 원들과는 다른 색이 칠해져 있다. 이처럼 이 작품에는 본격적으로 칸딘스키가 구성과 색채들 사이의 관계를 진지하게 탐구했음을 엿볼 수 있다.

전시된 작품 ‘구성(Komposition) 8’은 미술 교과서에서 봤을 법한 익숙한 칸딘스키의 회화다. 다양한 선, 도형, 색채가 이 작품에서는 계획적으로 캔버스 내에 배열돼 있다. 작품에 주로 사용된 검은색 선들 주변에 옅게 각기 다른 색으로 칠해져 있는 디테일들이 흥미로운 그림이다. 칸딘스키는 살아생전 이 ‘구성(Compositions)’ 시리즈들을 본인의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여겼다. 1910년부터 1939년까지 총 10개만 제작된 이 시리즈를 통해 칸딘스키는 색채와 형태 사이의 관계를 넘어 인간의 심리적인 영역까지도 탐구했다.

칸딘스키는 프랑스를 점령한 나치가 예술활동을 전면 금지했음에도 이처럼 작은 크기의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실험했다.


이 시리즈는 구겐하임 뮤지엄의 설립자 솔로몬 구겐하임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구겐하임은 바우하우스에 재직 중이던 칸딘스키를 만나기 위해 독일로 건너가 직접 만나서 ‘구성 8’을 구입했다. 구겐하임은 칸딘스키를 평생 후원했다.

1933년 나치가 바우하우스를 폐교시킨 후 칸딘스키는 프랑스로 넘어가 여생을 보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주도권을 쥔 나치가 예술 활동을 전면 금지했기 때문에 칸딘스키는 전처럼 대형 작업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작은 캔버스 위에서 실험적 작업을 계속 진행했다. 전시의 마지막 부분은 칸딘스키의 이같은 재료적 실험과 자연 과학 이미지가 차용된 작품들을 보여준다. 이번 기획전은 9월 5일까지 이어진다. /뉴욕=엄태근 아트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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