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의 강도 높은 대출 총량규제 여파로 잠잠하던 가계대출 시장이 연초부터 다시 들썩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일반공모 청약증거금 수요 등의 영향으로 신용대출이 6조 원이나 불어났고 주택담보대출도 불과 20일 만에 2조 3,000억 원 이상 늘면서 이미 지난해 12월 전체 증가액을 넘어섰다.
한국·미국 등 세계 각국이 수십년 만의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긴축 행보를 서두르면서 시중금리가 급등하는 데도 가계대출이 오히려 늘면서 자영업자 등 취약차주(대출자)를 중심으로 가계 파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또 주담대 금리가 연내 6%대 중반까지 급등하면서 최근 부동산 가격 하향세 등과 맞물려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기)’ ‘빚투(빚내서 투자)’족들의 한숨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출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대출자 10명 중 1명은 소득 5% 이상을 이자 내는 데 더 써야 한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연말 비수기 끝나자 주담대 2.3조 원 증가=2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20일 현재 718조 5,507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잔액(709조 529억 원)과 비교해 올해 들어 20일 사이 9조 4,978억 원(1.34%) 늘었다. 이미 지난해 12월 증가 규모(3,648억 원)의 약 26배에 이른다.
우선 이달 18~19일 LG에너지솔루션 일반공모 청약 등의 요인으로 신용대출이 같은 기간 139조 5,572억 원에서 145조 6,514억 원으로 6조 942억 원 급증했다. 주담대(전세대출 포함)도 505조 4,046억 원에서 507조 7,026억 원으로 2조 2,980억 원이나 불었다. 지난해 12월 이들 은행의 신용대출이 연말 상여금 등의 영향으로 1조 5,766억 원 감소하고 주담대 증가 폭도 2조 761억 원까지 줄어든 것에 비하면 20일 만에 분위기가 급변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은행권 가계대출 감소세는 주택 거래가 연말 비수기였던데다 대어급 공모주 청약도 없고 상여금까지 들어와 마이너스 통장이 메워졌기 때문”이라며 “이달에는 주담대까지 늘면서 LG에너지솔루션 청약 자금이 21일 이후 환불돼도 전체 가계대출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전체 은행권의 가계대출 잔액은 1,060조 7,000억 원으로 11월 말보다 2,000억 원 줄면서 7개월 만에 감소세로 전환했다.
◇“올해 안 신용대출 금리 5%대 중반·주담대 6%대 중반”=가계대출 증가세가 심상치 않은 가운데 대출금리도 오르고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21일 기준 주담대 변동금리(신규 코픽스 연동)는 연 3.710~5.210% 수준이다. 지난해 말 3.710~5.070%와 비교해 20일 새 상단이 0.140%포인트 높아졌다. 주담대 변동금리의 지표(기준) 금리인 자금조달비용지수(COFIX·코픽스)가 수신(예금)금리와 시장금리 상승 등에 따라 이달 17일 1.55%(신규 코픽스 기준)에서 1.69%로 0.140%포인트 뛰었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주담대 혼합형(고정형) 금리도 연 3.600~4.978%에서 3.880~5.630%로 상승했다. 최저 금리는 0.280%포인트 올랐지만 최고 금리는 0.652%포인트나 급등하며 5%대 중반을 기록하고 있다. 신용대출 금리의 경우 지난해 12월 말 3.500~4.720%에서 현재 3.508~4.790%로, 0.008~0.070%포인트 상승했다. 시장에서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올해 0.25%씩 두세 차례 정도 더 올려 최대 2%까지 인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기준금리 인상분만 반영해도 주담대와 신용대출 최고 금리는 올해 안에 각각 6%대 중반, 5%대 중반으로 치솟게 된다.
◇“금리 1%포인트 오르면 10명 중 1명은 이자로 소득 5% 더 내야”=이처럼 대출 이자가 급증하면 자영업자·저신용자 등 취약차주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우려된다. 박춘성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날 간행물 금융포커스에 실린 ‘금리 인상에 따른 차주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변화 분포와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전체 대출자 중 연 소득의 5배가 넘는 돈을 빌린 대출자 9.8%의 경우 금리가 1%포인트 오를 때 DSR은 5%포인트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자 10명 중 1명은 DSR이 1%포인트 높아지면 소득의 1%를 이자 부담에 추가로 써야 한다는 뜻이다. 박 연구위원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코리아크레딧뷰(KDB) 자료를 활용해 소득 수준, 원금 상환 일정 등 다른 조건은 고정한 상황에서 금리가 오른다고 가정해 이런 결과를 내놓았다. 같은 조건에서 DSR이 5%포인트 높아진 자영업자 비중은 14.6%, 소득 3분위 이하이면서 2개 이상 업권에서 대출을 받은 취약층 비중은 11.6%로 각각 나타났다. 자영업자와 취약층이 금리 인상에 더 영향받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보고서는 “대출금리가 1.5%포인트 상승하면 소득의 5% 이상을 추가 부담해야 하는 대출자는 전체의 18.6%로, 1%포인트 상승 때의 두 배로 늘어난다”며 “이는 매우 높은 비중”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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