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주요 정책들을 논의하기 위해 자문회의 의장인 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나와줘야 각 부처 장관들도 모이는데 대통령 의지가 약하다 보니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염한웅(사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포항공대 물리학과 교수)이 25일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에서 열린 신년 기자 간담회에서 지난 5년간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지난 1991년 설립된 대통령 직속 자문 기구다. 민간 전문가들이 모여 국가 과학·기술 정책을 자문한다.
염 부의장은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캠프에 영입됐던 인물이다. 정권 출범 이후 현재까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이끌어왔다. 하지만 이날 염 의장은 정부의 무관심 속에 민간 역량을 결집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의 ‘자문’ 기능이 방치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염 부의장은 “과학기술자문회의가 정책을 다루고 예산을 심의할 수 있지만 자문을 해달라는 청와대 요청이 드물어 활용 방법이 아쉬웠다”고 토로했다.
각 부처들의 ‘알력’과 정치권의 정무적 판단에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무력화됐다는 불만도 내비쳤다. 염 부의장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와 각 부처·장관들이 함께 힘을 내는 그림을 그려봤지만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가 만들어지며 장관들이 정책 실행을 논의하게 됐고 정책 방향성과 실행이 괴리됐다”며 “정무·정책적 동력으로 수없이 만들어진 위원회들로 주요 연구개발(R&D) 부문들이 떨어져 나가며 ‘한 그림’을 만들어내기 어려워졌다”고 꼬집었다.
염 부의장은 부처별로 조직되는 자문회의의 한계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각 부처를 통해 만들어지는 전문가 조직은 모두 정책의 대상자인 ‘을’”이라며 “부처를 넘어서서 발언하기 힘들고 실제 부처별 회의에서 종합해 나오는 정책은 회의 참석자들의 의견과 상반될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부처별 자문회의는 정책의 근거를 만들기 위한 ‘거수기’ 역할에 머물기 쉽다는 것이다. 염 부의장은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부처를 넘나들 수 있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같은 기관이 필요하고 각 부처와 청와대·민간의 역할 분담과 이를 아우를 수 있는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염 부의장은 산업 진흥 위주인 정부의 과학·기술 지원 정책에도 아쉬움을 표했다. 선진국형 과학·기술 정책으로의 변신을 위해서는 특정 산업이 아닌 기초연구 확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염 부의장은 “정부가 특정 기술을 선택해서 지원하고 새로운 산업을 키우는 ‘산업 정책으로서 과기 정책’의 시대는 갔다”며 “연구자·기초연구 중심 지원을 위해 민간 전문가들 주도의 상향식 정책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미래 산업을 특정해 지원하고 있는 정부 행보와 관련해 “정부나 공공 영역은 신성장 동력을 선택하고 투자할 만한 역량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삼성·네이버·카카오보다 정부가 인공지능(AI) 연구를 잘하거나 핵심 인재를 끌어들일 수 있느냐”며 “정부는 민간 기업이 하지 않는, 인류 번영에 중요한 기초 분야 연구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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