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삼성전자는 연간 매출 279조 원이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며 ‘반도체의 힘’을 다시금 드러냈다. 올해 상반기 메모리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 정보기술(IT) 분야의 수요가 되살아날 것으로 점쳐지면서 삼성전자가 ‘연 매출 300조 원과 영업이익 60조 원’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반도체가 앞장서고 스마트폰과 소비자 가전이 힘을 보태는 삼성전자만의 실적 공식이 위력을 발휘하려면 기민한 공급망 관리와 탄력적인 설비투자가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는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제때 공급하는 능력을 최대로 끌어올려 거시적 불확실성에 적극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27일 지난해 연간 매출은 279조 6000억 원, 영업이익은 51조 6300억 원으로 전년보다 각각 18.07%, 43.45%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올린 연간 매출은 역대 최대치였다. 또 지난해 4개 분기 모두 해당 분기의 최대 매출로 기록됐다. 영업이익 규모는 반도체 슈퍼 호황기였던 지난 2018년(58조 8900억 원) 이후 최대치이자 역대 세 번째다.
글로벌 반도체 1위 재등극
지난해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에서 벌어들인 연간 매출은 94조 1600억 원에 달했다. 전사 매출의 3분의 1가량이 반도체에서 나온 것이다. 반도체 사업의 영업이익은 29조 2000억 원으로 전사의 절반 수준 정도다. 주력 제품인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판가가 크게 오른 것이 반영된 결과다. 이 덕분에 삼성전자는 글로벌 1위 반도체 기업이라는 타이틀을 다시 거머쥐었다. 경쟁사 인텔은 이날(현지 시간) 오전 연간 매출이 790억 2000만 달러라고 발표했다. 지난해 평균 원·달러 환율(1444원 60전)을 적용할 경우 삼성전자 반도체 연간 매출은 823억 달러로 인텔을 한참 앞섰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팡파르를 울리기보다 시장 불확실성을 거듭 언급하며 철저한 대비에 나선 상태다. 연간 실적에 대한 가이던스도 제공하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글로벌공급망(GVC) 이슈 등 대외적 불확실성이 실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해 2월 미국 텍사스 오스틴 반도체 공장이 한파에 6주간 가동을 멈췄으며 중국 시안 낸드플래시 공장도 지역 봉쇄령으로 29일가량 가동에 차질이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반도체 분야 설비투자를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수준으로 해야 한다는 탄력적인 전략으로 이어졌다.
한진만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올해도 부품 수급이나 원·부자재 이슈 등 (메모리 반도체) 수급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이 있다”면서 “업계 전반적으로 설비 납품 기간(리드타임)이 길어지고 있으며 공정 난도도 높아져 고객 수요에 어떻게 적시에 대응하냐가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비트그로스(비트당 출하량 증가율)는 투자와 생산성이라는 두 가지를 최적화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시황에 따라 생산라인의 인풋과 아웃풋을 적절히 조절하겠다고 덧붙였다. 다만 경쟁사인 대만 TSMC가 올해 440억 달러(약 52조 원)를 설비투자에 쏟아붓겠다고 밝혀 탄력에 방점을 찍은 삼성전자도 지난해 43조 6000억 원보다 더 많은 금액을 반도체 설비투자에 투입할 가능성도 있다.
‘탄력적 투자’ 기조 유지
올 한 해 실적은 긍정적 전망이 주를 이뤘다. 삼성전자는 빅테크 기업의 서버 투자가 확대되고 신규 중앙처리장치(CPU)를 도입한 노트북·PC 등이 늘어나 메모리 반도체 시황이 올해 상반기 회복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메모리 업황 반등은 이 시장 1위인 삼성전자에 청신호다. 또 삼성전자 MX(무선 사업) 부문에서 올해 5세대(5G) 이동통신 스마트폰 풀 라인업을 선보일 계획을 밝힌 가운데 시스템 LSI에서 생산하는 시스템온칩(SoC) 매출도 큰 폭으로 증가할 것으로 점쳐진다.
파운드리는 상반기에 1세대 GAA 공정을 기반으로 세계 최초로 3나노미터 제품을 양산하고 글로벌 고객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강문수 삼성전자 파운드리 전략마케팅실 부사장은 “선단 공정 수율 개선에 주력하며 고객사 수요를 안정적으로 대응하는 데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전·OLED사업, 혁신제품 승부
반도체 외 사업 부문은 수익성을 높이는 데 주력한다. 지난해 4분기 중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사업에서 역대 최고 분기 영업이익을 달성한 삼성디스플레이는 노트북과 게이밍 기기, 전장 부품 등 고부가가치 응용처를 추가로 발굴해 성장세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선보인 퀀텀닷(QD) 디스플레이는 올해 말까지 수율 경쟁력을 확보할 계획도 공개했다. 최권영 삼성디스플레이 기획팀 부사장은 “향후 중소형 OLED 시장은 경쟁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다이아몬드 픽셀 등 독보적인 기술을 브랜딩하고 시장에 적극 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연간 매출 55조 8300억 원에 영업이익 3조 6500억 원을 달성한 CE(소비자가전) 부문은 제품 수요가 전반적으로 둔화하는 상황 속에서도 라이프스타일에 초점을 맞춘 신가전, 프리미엄 초대형 TV 등으로 수익성을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이수민·강해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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