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만 ‘청약 개미’의 돈잔치가 막을 내렸다.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던 LG에너지솔루션(373220)(LG엔솔)이 주식시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LG엔솔은 시가총액만 해도 110조 원에 달하는 엄청난 덩치 탓에 시장 수급을 왜곡시키며 증시마저 크게 흔들어놓았다. 주당 30만 원에 달하는 공모주를 받기 위해 무려 114조 원의 자금이 몰렸고 ‘허수 주문’ 기관은 수요예측에서 1경 500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숫자를 선보인, 그야말로 국내 증시 역사상 유례없는 이벤트였다. 당초 기대했던 ‘따상(공모가 대비 160%)’은 실패했지만 공모가보다 68% 오른 채 첫날을 마쳤다. 국내 주식 투자자가 1000만 명에 달한다고 하니 2명 가운데 1명은 설날을 앞두고 두둑한 ‘세뱃돈’을 챙긴 셈이다.
지난 2020년 9월 17일 LG화학이 배터리사업부를 물적 분할하겠다고 공시한 이후 16개월 동안 숱한 이슈를 몰고 온 LG엔솔은 상장하자마자 코스피 시총 2위로 올라섰다. 한국의 대표 기업 삼성전자 다음가는 자리다.
하지만 글로벌 배터리 사업을 이끌 새로운 스타 탄생이라는 뿌듯함보다는 뭔가 개운치 않은 기분을 떨치기 힘들다.
음수사원(飮水思源)이란 말이 있다. 물을 마실 때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생각하라는 뜻이다. LG엔솔은 최근 증시의 화두로 떠오른 ‘물적 분할의 사생아’다. 개인 주주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대선 주자들마저 잇따라 개선책을 내놓고 정치권에서도 적극적인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는 그 ‘물적 분할’이다. LG엔솔은 개인 주주의 이익과는 상관없이 기업과 대주주의 이익만을 위해 단행되는 ‘쪼개기 상장’의 상징이 됐다. 이는 앞으로 LG엔솔에 붙어다닐 달갑잖은 ‘꼬리표’다.
LG엔솔은 갈수록 본질과 멀어지는 공모주 투자의 그늘도 보여줬다. 최근 잇따른 공모주 열풍 속에 도입된 균등분배 등 개인 참여를 급격히 확대한 부작용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주식 투자에서 수익과 리스크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하지만 이번 청약에서 440만 명은 ‘무위험 수익’을 기정사실화하며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 건강한 투자 문화와 자본시장의 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더구나 이런 동학 개미의 공모주 열풍을 역이용하는 세력도 있다. 외국인은 LG엔솔이 상장하자마자 1조 5000억 원어치를 내다 팔며 엄청난 공모 차익을 챙겼다. 일정 기간 주식을 매도하지 않겠다는 확약을 하고 공모주를 더 많이 확보한 외국인 투자자들은 첫날 LG엔솔 주가가 공모가보다 급등한 채 거래를 시작하자 페널티를 무릅쓰고 팔아 대기에 바빴다.
돈을 잃기 위해 투자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리스크가 불가피하고 이를 감내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LG엔솔이 상장 첫날 공모가보다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우려한 사람은 440만 명 가운데 과연 몇이나 될까.
위험 없는 수익은 주식시장에 존재하지 않고 존재해서도 안 된다. 몇 년 전 투자시장을 혼돈에 밀어넣은 사모펀드 사태도 어찌 보면 ‘절대 손실을 볼 수 없는 구조’라는 존재할 수 없는 사실을 그대로 믿어버리게 만든 왜곡된 투자 문화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올해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역대 최대 규모인 25조 원의 공모가 펼쳐질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하루짜리 ‘공짜 점심’을 겨냥해온 가족을 동원하는 자금이 불나방처럼 날아들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는 한국 증시를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지수에 편입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우리 증시가 오는 6월에 관찰국 대상 리스트에 오르게 하기 위해 외환 거래 시스템을 그들의 입맛에 맞게 고치고 공매도도 전면 재개할 움직임이다.
한국 자본시장이 선진국 반열에 오르는 것은 여러모로 반길 일이다. 하지만 외환 시스템이나 공매도 못잖게 주주를 외면하는 ‘물적 분할’을 비롯해 온 국민을 광풍(狂風)으로 몰아넣는 공모주 투자 문화 역시 개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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