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공개(IPO)를 통해 최대 1조 2,000억 원을 조달하려던 현대엔지니어링의 계획이 결국 무산됐다. 수요예측에서 경쟁률이 50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등 부진했기 때문이다. 상장을 통해 3,000억원 이상의 종자돈을 확보, 그룹 지배구조를 강화하려던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계획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상장 재도전에 나설지도 관심인데, 이르면 4월 중 공모에 다시 돌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엔지니어링은 28일 IPO 일정을 철회한다고 공시했다. 수요예측 경쟁률이 50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등 공모 시장의 반응이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서 진행된 LG에너지솔루션의 수요예측 경쟁률 2,023대 1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회사측은 공모가를 희망 범위 하단인 5만 7,900원 혹은 그 아래로 정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결국 일정을 연기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의 수요예측 부진은 증시 급락과 HDC현대산업개발 사태가 겹악재로 작용한 측면이 컸다. 미국발 금리 인상 우려로 코스피지수가 수요예측 마지막날인 지난 26일 2,700포인트 아래까지 꺾였고 현대산업개발의 광주광역시 화정 아파트 붕괴 사고로 건설주에 대한 투심마저 차갑게 식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공모가 하단을 기준으로 해도 현대엔지니어링 시가총액이 4조 6,293억 원에 달해 모회사인 현대건설(000720)(4조 4,600억 원)이나 경쟁사인 삼성엔지니어링(4조 2,000억 원)보다 몸 값이 비싼 것도 기관들의 투자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회사의 공모 구조 및 공모가를 수요 예측 부진의 원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구주 매출 1,200만 주(75%)와 신주 모집 400만 주(25%)로 9,264억 원 공모를 계획했다. 공모가 하단 기준 회사에 신규 유입되는 자금은 2,316억 원에 그친다는 분석이다. 나머지 약 7,000억 원은 정 회장(3,093억 원),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823억 원), 현대글로비스(1,166억 원), 기아·현대모비스(각 933억 원)에 돌아간다. 공모주 투자자들은 통상 IPO 자금이 회사의 신규 투자에 활용돼 미래 성장의 기폭제가 되기 바라기 때문에 구주 매출 비중이 높은 것이 흥행에 걸림돌이 됐다는 평가다.
현대엔지니어링의 향후 상장 일정에도 관심이 쏠린다. 상장에 재도전할 것이란 분석도 나오는데, 재개한다고 해도 지난해 4분기까지의 실적이 집계되는 4월 이후에야 공모가 가능할 전망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 12월 6일 거래소의 상장 예비 심사를 통과, 규정에 따르면 6월까지만 증시에 입성하더라도 절차상 문제는 없다.
한 IB 관계자는 “해외 기관 투자가들의 135일 룰( 재무제표 작성 후 135일 내 상장 일정 마치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규칙) 등을 고려하면, 지난해 전체 실적이 나오는 3월 말 이후 IPO 재도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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