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긴축 공포에 증시가 급격히 조정을 받자 현대엔지니어링이 예정된 상장 일정을 28일 결국 철회했다. 사상 최대 공모로 관심을 모았던 LG에너지솔루션이 지난 27일 코스피에 입성하며 불안한 시장을 더욱 흔들어 놓으면서 기업공개(IPO) 대어인 현대엔지니어링 상장이 불발된 측면도 있어 컬리·현대오일뱅크·SSG·원스토어 등 상장을 계획했던 대형사들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게 됐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과 연계된 현대엔지니어링 상장은 일러야 오는 4월쯤 재개가 가능할 것으로 관측된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이날 오전 코스피가 1년 2개월 만에 장중 2,600선이 깨지는 등 시장 불안이 지속되자 남은 IPO 일정을 전면 취소한다고 공시했다. 회사 측이 앞서 25~26일 진행한 기관 대상 청약인 수요예측도 급락장의 유탄을 맞아 경쟁률이 수십 대 1에 그치며 부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공모가를 확정해야 하는 현대엔지니어링 입장에서는 공모가를 희망 범위 하단인 5만 7900원보다 낮게 책정해야하는 수모를 감당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엔지니어링의 상장 철회는 최근 증시 침체와 HDC현대산업개발의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의 유탄을 맞은 측면이 있지만 전날 상장하며 단숨에 시가총액이 100조 원을 훌쩍 넘은 LG엔솔이 시장 수급에 일대 혼선을 야기한 부분도 간과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실제 LG엔솔 상장과 동시에 공모 물량을 즉각적으로 팔며 차익 실현에 나선 외국인이 이틀간 LG엔솔만 1조 8,897억 원의 순매도를 기록하며 코스피지수에 엄청난 부담을 줬고 기관들은 LG엔솔 매수를 위해 삼성전자와 LG화학·삼성SDI 등 다른 대형주를 대량 매도해 시장 전반의 수급이 일시적으로 무너지기도 했다.
대형 공모주의 시장 데뷔 공포는 현대엔지니어링의 상장 불발로 건설주들이 이날 안도의 한숨을 쉬며 급등한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현대건설(000720)(9.61%)을 비롯해 DL이앤씨(7.87%), GS건설(5.80%), 대우건설(6.18%) 등 건설주들은 간만에 큰 폭의 상승세를 기록했다. 건설 업계에서는 현대엔지니어링이 상장하면 LG엔솔처럼 경쟁사들의 투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주가에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왔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시장 불안과 초대형 IPO에 따른 부담으로 상장이 물거품되자 올해 증시 입성을 준비 중인 기업들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상반기에 기업가치 2조 원을 기대하는 원스토어를 비롯해 현대오일뱅크(기업가치 약 10조 원)·컬리(약 5조 원)·CJ올리브영(약 3조 원)·SK쉴더스(약 3조 원) 등이 공모에 나설 예정이었는데 시장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숨 고르기를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SSG닷컴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도 올 하반기 상장을 계획했으나 신중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IPO업계의 한 전문가는 “최근 높아진 공모주 투자 열기에 상당수 기업들이 상장을 통한 자금 조달에 많은 기대를 했다” 면서 “대형 IPO주의 시장 수급 교란에 대한 우려가 나오면서 공모가 및 기업가치를 산정할 때 이전보다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한편 신사업을 위한 자금 조달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구주 매출을 통한 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함께 걸려 있는 현대엔지니어링의 상장 재추진은 일러야 4월쯤 재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거래소의 상장 예비 심사를 통과한 현대엔지니어링은 심사 승인 효력이 6개월간 유지되기 때문에 6월 초까지 증시에 입성하면 절차상 문제는 없다. 회사 측은 지난해 전체 실적이 최종 집계되는 3월 말 이후 IPO 재도전이 가능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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