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라고 뭐 있나요? 돌아갈 고향도 없는데.”
닷새간의 긴 설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28일. 낮 최고기온이 영하권을 기록한 이날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쪽방촌에는 유난히 차가운 바람이 몰아쳤다. 주민 최모(68) 씨는 “대구에서 나고 자랐지만 안 간 지 오래돼서 고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씁쓸한 한숨을 내뱉었다. 이곳 쪽방촌 주민들에게 민족 최대 명절인 설날은 1년 365일 중 그저 평범한 하루에 지나지 않았다.
이날 서울경제가 만난 쪽방촌 주민들은 명절을 맞아도 따로 만날 가족이 없거나 있어도 만나기 힘들다고 전했다. 최 씨는 “설날에도 평소처럼 아침을 간단히 때우고 제기동 공원에 산책을 나간다”면서 “길거리에 설 선물을 들고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가족들 생각나곤 한다”며 애써 웃음지어 보였다.
최 씨는 20여 년 전 IMF 사태 때 가족들과 헤어진 후로 줄곧 연락이 끊겼다. 빚에 쫓기며 고시원 생활을 전전하다 5년 전 겨우 이곳 창신동에 정착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나마도 나이가 들어 끊기고 기초생활수급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 최 씨는 “의료급여를 받으려면 자식들이 부모를 부양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해야 하는데 20년이 넘어 갑자기 연락하기 좀 그렇다”고 말했다. 최 씨는 명절이면 그래도 여기저기서 도시락이나 쌀과 같은 기부 물품이 들어오지만 병원비와 약값이 늘 걱정이라고 전했다. 고령으로 인한 지병으로 매일 달고 사는 약 봉투만 한 보따리이기 때문이다.
창신동 쪽방상담소는 주민들을 위해 설날 연휴에도 문을 닫지 않고 열려있다. 이동휘 쪽방삼담소 소장은 “주민들 10명 중에 7명가량은 65세가 넘는 고령이라 오갈 곳이 없어 외로움을 더 크게 타는 것 같다”며 “설날 기부 물품도 배분해야 하고 주민들이 추위를 달래러 쉼터를 찾는 경우도 있어 명절에도 문을 닫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사정은 서울 종로구의 돈의동 쪽방촌도 마찬가지였다. 돈의동 쪽방촌은 탑골공원, 낙원악기상가, 종로 귀금속 거리를 끼고 서울 시내 한복판에 위치해 있지만 골목 안은 막상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영하권 날씨로 주민들 대부분은 방 한 켠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4년 전 이곳에 들어온 주민 박모(70) 씨는 “기초생활수급이 들어오지만 교통비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해 명절에도 오갈 곳이 없다”며 “울적함에 대낮부터 술 한잔 기울였다”고 말했다. 나무로 된 박 씨의 방문에는 찬바람이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한 휴지 뭉텅이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오미크론 변이의 활개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는 상황도 한몫했다. 다른 주민 A씨는 “코로나19가 잠잠할 때는 연휴 때 탑골공원에라도 나가 사람들을 만나기라도 했는데 지금은 감염 확산세가 거세 밖으로 나돌 엄두도 나지 않는다”면서 “하필 설날을 앞두고 확진자가 급증해 이번 설날은 유독 더 적적하게 보내게 될 것 같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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