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에 이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공포 등의 영향으로 국제 상품 시장에서 농산물이 조용한 질주를 벌이고 있다. 100달러 돌파를 목전에 둔 국제 유가에 온 시장의 관심이 쏠려 있지만 전문가들은 ‘공급발 불안’ 가중으로 당분간 상승 추세가 계속될 것이라면서 농산물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한다고 권고한다.
7일 유가증권시장에서 ‘KODEX 콩선물(H)’ 상장지수펀드(ETF)는 전 거래일 대비 1.18% 올라 1만 3705원에 거래를 마쳤다. 새해 상승률만 16.8%에 달한다. 옥수수·대두·밀에 투자하는 ‘KODEX 3대 농산물선물(H)’도 같은 기간 6.0% 뛰며 하락장에서 존재감을 발휘했다. 미국 대표 농산물 ETF인 ‘인베스코 DB 아그리컬처(티커 DBA)’는 지난 4일 장중 20.62달러까지 오르면서 나흘 연속 52주 신고가를 새로 썼다. DBA는 밀·대두(콩)·옥수수·커피 선물을 고르게 담고 있으며 연초 이후 4.3% 상승했다. 농산물 상품에 자금도 몰려들고 있다. 이베스트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주 글로벌 농산물 펀드의 자금 유입 강도(펀드 자산 규모 대비 신규 유입액)는 0.9%로 에너지섹터를 제치고 원자재 상품 유형 중 가장 높았다.
새해 자산 시장의 주인공으로 부상한 원유가 투자자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지만 농산물도 만만치 않은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글로벌 대표 원자재지수인 S&P GSCI(TR)가 연초부터 이달 4일까지 15.1% 뛴 데는 천연가스·원유 등 에너지섹터(23.3%)의 공헌이 컸다. 하지만 농산물섹터도 5.4% 반등하면서 산업금속(4.8%)과 귀금속(-1.5%)의 성과를 압도했다. 구체적으로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3월물 대두 가격은 연초 이후 16.9% 뛰었고 옥수수(4.6%), 커피(7.0%) 등도 강세를 나타냈다.
지난해 4분기부터 계속된 이상기후와 물류 적체 현상이 농산물 가격을 밀어올렸다. 지난해 10월 발생한 라니냐의 여파로 대두와 옥수수 등의 주산지인 남미 지역에서는 예상보다 건조한 기후가 나타나며 작황에 빨간불이 켜졌다. 실제 이달 4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곡물거래소는 가뭄 현상으로 농작물이 피해를 입었다면서 2021~2022년 대두 수확량을 기존 4400만 톤에서 4200만 톤으로 낮추는 등 곡물 생산량 전망치가 내려오고 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전운이 고조되면서 곡물 공급 불안을 키웠다. 비옥한 흑토지대 위에 있어 ‘유럽의 빵 바구니’로 불리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함께 전 세계 밀 수출량의 29%를 차지해 파급력이 컸다.
전문가들은 식량 가격의 상승 공간이 남아 있다고 진단한다. 상승을 촉발했던 기후와 군사 위험이 해소되지 못한 가운데 농산물 생산 비용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비료 값 상승분 전가까지 더해지면서 상방 압력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천연가스 가격 급등의 여파로 지난해 12월 세계은행이 집계하는 비료 가격은 2008년 10월 이후 최고치(208포인트)까지 치솟았다. 아울러 화폐 가치 하락을 방어하려는 수요도 가격 하방을 지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농산물을 비롯해 원자재 전반은 올해 ‘전강후약’의 궤적을 그릴 것으로 예상된다. 연말로 갈수록 물가가 진정되고 공급도 확대되면서 수급이 안정세를 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원자재 투자는 긴 호흡으로 접근하기보다 2분기 이후 높아질 변동성에 대비해 방망이를 짧게 쥐고 가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김소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비료 가격, 이상기후, 지정학 리스크 등의 변수가 맞물리면서 가격 상승 가능성이 높은 농산물을 유망 상품으로 찍는다”면서도 “하반기에는 원자재의 단계적 비중 축소를 권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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