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용 인쇄회로기판(PCB) 업체의 주가가 들썩이고 있다. 5세대(5G) 이동통신과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비대면 효과 등이 맞물리면서 기판업계 호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 인상, 인플레이션 리스크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주춤하는 중에도 업황을 등에 업고 든든한 방어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국내 업체들의 경우 주력 분야가 달라 공급 과잉 우려도 말끔하게 씼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주요 업체들이 수요 급증에 앞다퉈 설비 투자에 나서면서 성장세에 힘을 더할 것으로 보고 있다.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주요 PCB 생산업체들의 주가는 지난해 말 대비 급등하는 추세다. PCB 전문 생산업체 중 매출 규모가 가장 큰 심텍(222800)은 지난해 12월 저점인 3만 8650원 대비 16% 오른 4만 4950원에 거래되고 있다. 대덕전자(353200)는 지난해 12월 저점인 1만 9900원 대비 11% 올랐으며, 코리아써키트(007810)와 인터플렉스(051370)도 같은 기간 저점 대비 각각 24%, 25% 급등했다.
PCB 업체들의 주가에 청신호가 켜진 것은 공급난 장기화가 예상되는 ‘플립칩-볼그리드어레이’(FC-BGA) 기판 성장세 덕분이다. PCB는 우리 몸으로 말하면 신경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전자부품을 고정시키고 전기적으로 연결하는 회로기판을 말한다. PCB는 모바일 기기나 가전 기기, 자동차, 항공기 등 전방사업에 폭넓게 쓰인다. 그 중에서도 FC-BGA는 반도체보다 기판 크기가 훨씬 큰 고성능 중앙처리장치(CPU)나 그래픽처리장치(GPU)에 쓰인다. FC-BGA는 기술 진입 장벽이 상당히 높다. 공급사도 상당히 제한적이어서 품귀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국내에서는 삼성전기, 대덕전자, 코리아써키트, 심텍 정도가 경쟁력을 갖춘 업체로 평가된다.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FC-BGA 패키지 기술 진화로 제조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공급 부족은 2026년까지 지속될 것”이라며 “해당 시장은 중장기적으로 연평균 14% 이상 성장세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수급난이 지속되자 FC-BGA에 신규 투자를 결정한 업체로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 지난 한달간 기관과 개인은 심텍을 230억 원씩 사들였으며 대덕전자도 각각 50억 원, 300억 원 가량을 담았다. 최근 FC-BGA 분야로 확장을 검토 중인 LG이노텍에도 기관(1170억 원)과 개인(1760억원)의 순매수가 몰렸다.
최근 글로벌 5G 보급 확대로 응용처가 늘어나는 점도 긍정적이다. 스마트폰의 5G 전환에 따라 스마트폰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성능이 향상되면서 기판의 면적이 커지고, 집적도가 높아진다. 이에 따라 통신칩·안테나모듈에 사용되는 시스템인 패키지 기판(SiP)과 안테나 기판(AiP) 공급 확대가 이뤄질 수 있다. 특히 고주파 영역인 28Ghz 5G 스마트폰 시장이 개화될수록 반도체 기판 시장은 큰 폭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5G 확대로 인한 낙수효과도 유효하다는 분석이다. 박강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이 고부가 5G 제품에 집중하면서 기존에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낮은 패키지 기판이 심텍과 대덕전자로 이동하면서 업체 간의 낙수효과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주요 업체들은 고부가 제품을 중심으로 설비 투자에 나서면서 시장 선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심텍과 대덕전자는 각각 1071억 원, 1100억 원씩을 투자하며 공격적인 증설에 나섰다. 삼성전기도 증설에 1조 원 규모를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연구원은 “코로나 19 이후에 PC 수요 증가, 5G 스마트폰으로 전환 과정에서 적시 투자가 이뤄지면서 높은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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