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법정화폐로는 채택하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결제를 제외한 거래와 채굴 등 암호화폐 관련 활동은 정부 규제 아래에서 허용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14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오는 18일 암호화폐 규제법안 시행을 앞두고 부처 간 막바지 조율 작업을 벌이고 있다. 알렉산더 쇼킨(Alexander Shokhin) 러시아산업기업가연맹(RSPP) 회장은 이날 디지털화(digitalization) 관련 회의를 마친 직후 “암호화폐 금지와 규제의 두 가지 의견이 거의 좁혀졌다”며 “결제수단으로서의 암호화폐는 금지하면서 나머지는 규제하는 방안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이 기대했던 암호화폐의 법정화폐 채택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암호화폐와 관련한 다른 활동들은 규제를 마련해 허용해주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러시아는 전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암호화폐 거래 국가다. 블록체인 기술 업체 트리플에이(TripleA) 조사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는 전체 국민 가운데 약 12%가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있다. 암호화폐 보유자 수 기준으로 전세계 3위에 해당한다. 비트코인(BTC) 채굴 규모도 전세계 세 번째로 크다.
러시아 정부는 암호화폐 시장이 빠르게 커지자 규제 방안 마련에 돌입했다. 하지만 정부 내에서도 암호화폐 거래와 채굴 등 전반적인 활동에 대해 전면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포지티브 규제(최소 허용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오는 18일 암호화폐 규제법 시행을 앞두고 러시아 정부가 부처 간 막판 이견 조율에 나서는 이유다.
법정 통화인 루블화의 가치를 지켜야 하는 러시아 중앙은행은 암호화폐를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지난달 발간한 보고서에서 “투기 수요가 암호화폐의 급속한 성장을 결정짓는다”며 “암호화폐는 금융 안정을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기관이 암호화폐 관련 어떤 영업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암호화폐 거래소를 폐쇄하게 하는 강력한 규제법안을 도입해야 한다는 게 러시아 중앙은행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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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러시아 재무부는 전면 금지보다는 암호화폐를 규제 안에서 포용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반 체베스코프(Ivan Chebeskov) 러시아 재무부 금융정책 국장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암호화폐 시장은 금지하는 것이 아닌 규제를 해야 한다”며 “첨단 기술 산업인 암호화폐를 단순히 금지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의회도 중앙은행의 암호화폐 전면 금지 주장은 월권이라며 재무부의 편에 섰다. 러시아 의회 암호화폐 그룹 수장 안드레이 루고보이(Andrei Lugovoy) 의원은 “암호화폐 금지는 중앙은행의 독단적인 구상”이라며 “암호화폐 금지 여부에 대해 중앙은행이 결정할 권한은 없다”고 비판했다.
러시아 정부는 관계 부처 간 논의 끝에 암호화폐를 수단 별로 구분해 금지하거나 규제를 전제로 허용하기로 의견이 모아진 것으로 보인다. 암호화폐를 결제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금지하되 거래와 채굴 등 나머지 활동들은 적절한 규제와 함께 허용될 가능성이 높다. 블라디미르 포타닌(Vladimir Potanin) RSPP 조정 위원회 공동 위원장은 “RSPP는 정부와 중앙은행, 의회와 암호화폐 규제는 디지털 금융 자산보다 더욱 복잡하고 어렵게 접근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암호화폐의 법정화폐 채택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이를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발언도 나왔다. 포타닌 위원장은 “우리는 모두 암호화폐를 법정통화로 지원하는 것엔 반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러시아의 암호화폐 규제 법안은 오는 18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지난해 1월 시행된 러시아 디지털금융자산법 내용을 보완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나톨리 악사코브(Anatoly Aksakov) 러시아 금융시장위원회 위원장에 따르면 암호화폐 규제법 초안은 지난주 이미 완성된 상태로 시행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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