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이 글로벌 원자재 가격 상승을 가속화하고 금융시장 교란을 유발하면서 기업들의 1분기 실적에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해 코로나19와 원자재 가격 급등에도 ‘역대급’ 실적을 올린 반도체·배터리·자동차·철강 등 우리 주력 산업의 실적이 일제히 고꾸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배터리의 핵심 재료인 탄산리튬 가격이 지난해보다 5배 급등하는 등 원자재 가격 오름세가 지속되면서 배터리 기업들은 경영전략을 다시 세우고 있다. 배터리 업체의 한 고위 임원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수익 구조가 악화하고 있는데 상황이 개선될 기미가 없다”며 “자동차 회사와 원자재 가격을 제품 가격에 연동하는 협상을 다시 시도하는 기업들이 많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배터리 기업들이 1분기에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반도체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완성차 업계도 실적에 비상이 걸렸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이날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 자동차 생산은 전년 동기 대비 13.7% 감소한 27만 1054대로 나타났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 지속 등으로 내수도 19.2% 줄어든 11만 1294대에 그쳤다. 수출도 17만 9709대로 6.4% 쪼그라들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거나 국지전이 발생할 경우 러시아·동유럽 판매는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우려된다.
가장 큰 충격을 받고 있는 곳은 저가항공사(LCC)다. 제주항공·진에어·티웨이항공 등 LCC는 70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한 가운데 1분기에도 적자 행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유가 급등으로 비용 부담이 가중되는 데다 환율 오름세(달러 가치 상승)로 환차손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소비심리 위축이 실적 저하로 이어지지 않을까 속을 태우고 있다. 러시아에서 5조 원 이상의 가전 매출을 달성하고 있는 양사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지속되거나 미국의 제재가 현실화할 경우 매출 감소가 불가피해진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은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 간 전쟁 가능성은 글로벌 공급망과 물류 붕괴뿐 아니라 수요 위축까지 초래할 것”이라며 “최근 금리 인상으로 기업의 자금 조달 사정까지 좋지 않은 만큼 정부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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