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기업·공공기관의 평가 전권을 쥐고 정권 요구에 따라 경영 평가 제도를 변경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필요할 때마다 바뀌는 정부의 ‘고무줄’ 잣대에 경영 평가의 객관성은 사라진 지 오래다. 정부의 입맛만 맞춰주면 양호한 평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점도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이 사라지지 않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일관성과 객관성을 갖춘 경영 평가 제도에 대한 요구가 커지는 이유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달 개최한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지방 공기업 경영 평가에서도 요금 동결에 따른 경영 손실분이 발생할 경우 경영 평가상 불이익을 주는 대신 가점을 부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근 치솟는 물가 급등세를 안정시키기 위해 지방 공공요금을 동결하면서 ‘나름의 당근책’을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각종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비용이 늘어나는데도 억지로 요금을 동결하면서 공기업 재정 상황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이전에도 공공기관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경영 평가를 악용한 사례는 적지 않았다. 지난 6일 발표된 ‘공공기관의 통합 공시에 관한 기준’ 개정안만 보더라도 정부는 현 정권에서 강조하고 있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관련 항목을 평가 항목에 새로 추가했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은 연간 에너지 총사용량, 연간 폐기물 발생 실적, 연간 용수 사용량, 저공해 자동차 보유·구매 현황 등을 매년 공시하고 환경 관련 법규 위반 사항을 수시로 알려야 한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고 나선 문재인 정부도 집권 초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실적, 청년 미취업자, 시간선택제 실적에 가중치를 주겠다고 했다.
공공기관 역시 경영 평가 잣대에만 맞춘 ‘보여주기식’ 경영에 몰두하다 보니 재정 상황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가중된 부담은 결국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거나 미래 세대에 전가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관성과 객관성을 갖춘 공공기관 평가 제도가 확립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공기업을 비롯한 공공기관을 평가하는 주체가 정부밖에 없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평가 주체를 보다 다양하게 구성해 정부의 ‘입맛대로 평가’를 견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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