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코로나19가 여전히 전세계에서 맹위를 떨쳤지만 기업들은 비대면의 장애를 넘어 왕성한 투자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공격적 기업 투자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인수합병(M&A) 규모는 세계적으로 5조 8000억달러(약 6905조원)에 달해 사상 최대를 찍었고, 우리나라 역시 상장·비상장사를 가리지 않고 1000건 가까운 M&A가 단행돼 58조원 넘는 거래가 이뤄졌습니다. 한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수 있는 M&A는 투자은행(IB) 업계에서 최고 난이도의 딜(Deal)로 꼽힙니다. 한국의 IB명가들에서 M&A의 산실로 자리잡은 곳들을 서울경제신문의 자본시장 전문 매체인 시그널(Signal)이 찾아가 담당자들을 만나면서 다양하고 입체적인 이야기를 전달해보겠습니다.
유안타증권은 지난해 2조 원 규모의 테일러메이드 인수합병(M&A)에 참여하면서 일약 존재감을 높였다. 중견 증권사로 흔치 않게 수천억 원 대 후순위 지분 총액 인수를 맡는 과감한 행보에 나섰다. 유안타증권의 변신 배경에는 지난해 초 합류한 베테랑 IB맨 김병철 기업금융본부장의 리더십이 있었다. 그를 필두로 올해 본부 역량을 한층 더 강화하고 제 2의 테일러메이드 딜을 발굴한다는 포부다.
유안타증권은 1994년 삼성증권 공채 1기로 입사해 줄곧 IB 커리어를 쌓아 온 김 본부장을 영입하면서 빅 딜에 뛰어들 채비에 나섰다. 그는 기업공개(IPO), 회사채 발행, 유상증자, 인수합병(M&A) 등 분야를 막론하고 역량과 경험을 갖춘 삼성증권 IB의 ‘키맨’이었다. 특정 분야를 보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반적인 IB 역량 강화와 수준 높은 의사결정 체계 정립을 원하는 궈밍쩡 유안타증권 대표의 의중을 반영했다.
김 본부장 영입은 증권업계에서도 화제가 됐다. 삼성카드 IPO, STX팬오션 국내 상장, 카카오·다음 합병 등 이름을 들으면 알 법한 굵직한 딜이 그의 손을 거쳤기 때문이다. 옛 동양증권을 전신으로 해 브로커리지(위탁매매)와 자산 관리에 강점을 가졌지만 IB 존재감이 미미했던 유안타증권의 체질 개선 적임자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특히 대형사 출신으로 중견 증권사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지에 관심이 모였다.
김 본부장은 합류 직후 조직을 확대하는 데 중점을 뒀다. 기존 기업금융팀, ECM1팀에 더해 ECM2팀과 ECM3팀을 신설했다. ECM2팀은 신한금융투자 IPO부 출신으로, ECM3팀은 김 본부장과 삼성증권에 몸담았던 인력 위주로 구성됐다. 기업금융팀이 인수금융 등의 업무를 맡고 ECM1·2·3팀이 IPO, 유상증자, M&A 자문 등을 담당한다.
대형 증권사는 본부장이 바뀌면 같이 일했던 실무진을 내보내고, 보직을 크게 바꾼다. 본부장의 전략에 손발을 맞춰줄 임직원들 중심으로 조직이 개편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본부장은 기존 직원들의 역할과 업무를 최대한 존중 했다. 김 본부장은 “모든 임직원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각자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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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본부장의 조직 운영 철학은 취임 후 얼마 되지 않아 빛을 발했다. 이수용 팀장이 주축인 ECM2팀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센트로이드인베스트먼트파트너스의 테일러메이드 인수 딜 후순위 투자 참여 기회를 잡았다. 김 본부장은 ECM2팀을 전폭 지원했고 궈 대표의 지지를 바탕으로 67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할 수 있었다. 딜이 잘 마무리 된 후에도 IPO부 출신으로 밸류에이션 분석 역량을 갖춘 ECM2팀에게 공을 돌렸다.
ECM3팀도 눈에 띄는 성과를 냈다. ECM3팀은 지난해 코스닥 상장사 신흥에스이씨 전환우선주(CPS) 1000억 원 발행을 주관하고 공동 창업자 지분 2500억 원 매각을 자문했다. 신주 발행과 지분 매각을 비슷한 시기에 진행해야 하는 까다로운 거래였다. 신흥에스이씨는 삼성증권 시절 IPO를 도운 김 본부장과 인연을 바탕으로 유안타증권에 딜을 맡겼다. 증권사 외형보다는 IPO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김 본부장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탄탄하다는 뜻이다.
기업금융팀은 지난해 스마트스코어 컨소시엄의 골프 용품 브랜드 마제스티골프 인수 자금 1500억 원을 단독으로 주선했다. 유안타증권은 골프장 블루버드CC 및 유니아일랜드CC 거래에 인수 금융과 부동산 담보대출을 제공하는 등 골프 관련 딜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향후 기업 M&A 딜 참여를 늘려간다는 방침이다.
올해는 ECM1팀의 행보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 본부장 합류 이후 IPO 딜 수임을 늘리기 위해 분주한 1년을 보냈다. 기업들의 코스닥 상장을 우선적으로 성사시키고 추후 코스피 IPO 주관에도 도전한다는 방침이다. ECM1팀이 IPO를 위해 넓혀가고 있는 기업 네트워크는 추후 후속 딜까지 수임하는 바탕이 될 수 있다. 김 본부장은 "임직원의 역량을 단계적으로 발전시켜 경쟁력 있는 IB 하우스로 자리매김 하겠다”며 “M&A 시장에서도 테일러메이드 건에 준하는 딜을 발굴해 꾸준한 성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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