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원자재 수급난에 전기차 가격이 낮아지는 시점이 예상보다 지연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우리나라도 전기차 보조금을 자국 산업 육성을 위한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21일 산업동향 보고서를 통해 “전기차의 생산비용·판매 가격이 충분히 하락할 경우 보조금의 필요성은 줄어들지만 가격 하락이 예상보다 지연되고 있어 당분간 시장에서 보조금 효과가 지속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배터리 등 전기차 생산에 필요한 광물 가격이 상승하면서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가격이 동등해지는 시점이 기존 예상 시점인 2025년보다 늦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따라 전기차 보조금의 실익을 높일 수 있는 합리적인 정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게 연구원의 주장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미 세계 각국이 전기차 보조금을 자국 내 신산업을 육성하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전기차 보조금 정책에서 특정 국가의 제품을 명시적으로 차별하는 것은 어려우나 자국산 제품의 특성을 고려한 보조금 지급 방식이 보이지 않는 장벽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과 일본 등이 자국산 차량의 기술적 특성에 유리한 보조금 정책을 운용하고 있다. 중국은 자국 기업이 주행거리연장형전기차(EREV)를 생산한다는 점을 고려해 EREV도 보조금 지급 대상에 포함했다. EREV는 외부에서 충전이 불가하고 엔진이 상시 작동하는 탓에 보조금을 미지급하는 국가가 많다.
일본은 재난 발생 시 전기차가 비상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 근거해 외부 급전 기능이 탑재된 전기차에 대해 보조금을 추가 지급한다. 지난해 기준 대부분의 일본산 전기차에는 이 기능이 장착돼 해외에서 만든 전기차 대비 대당 보조금 상한액이 20만 엔 더 높게 책정된다. 자국 기업의 전기차 판매가 본격화되는 시점에 맞춰 보조금 지급액을 조정하는 경우도 있다. 이탈리아는 자국산 전기차인 피아트 ‘뉴 500 일렉트릭’ 판매가 본격화된 2021년부터 1대당 최대 2000유로 특별 보조금을 추가하는 등 보조금을 탄력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독일도 자국 폭스바겐의 전기차 ID 시리즈가 출시된 2020년을 전후로 대당 보조금을 최대 9000유로로 증액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자국 기업의 주력 모델에 맞춰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고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자국 기업이 소형 전기차 생산에 집중하자 보조금 지급 가격 상한선을 설정해 고가의 외국산 전기차의 판매를 억제했다.
이호중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전략본부 책임연구원은 “전기차에 탑재되는 배터리 에너지 밀도 등 다양한 기술 요건을 구체화함으로써 전기차 및 배터리 산업의 혁신을 동시에 추구해온 중국 등의 정책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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