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산운용사들이 러시아 펀드에 대한 환매 중단에 나섰다. 국내 유일의 러시아 상장지수펀드(ETF)는 과열된 가격을 해소하지 못하면서 단일가 매매가 시행되고 거래 정지 위험에 직면했다. 수익률 훼손은 물론 현금화의 길까지 막히면서 러시아 베팅에 나섰던 투자자들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
2일 증권 업계에 따르면 이날 한화자산운용·신한자산운용·키움자산운용이 러시아 펀드에 대한 환매 및 설정 제한 결정을 내렸다. 앞서 지난달 28일 KB자산운용이 ‘KB러시아대표성장주펀드’에 대한 동일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따라 ETF를 제외한 러시아 주식형펀드 8개 중 5개의 환매가 중단됐다. 5개 펀드의 순자산은 1160억 원 규모다.
투자 주식의 90%가량이 영국에 상장된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러시아 펀드 3종만이 환매가 가능하다.
러시아가 극단적인 거래 제한 카드를 꺼내자 운용사는 환매 대응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렸다. 전쟁 공포에 증시와 화폐 가치가 폭락하자 러시아는 유가증권에 대한 외국인의 매도 주문을 거부하고 28일부터 이날까지 휴장을 이어나가고 있다. 키움자산운용 관계자는 “환매 재개 시점은 예단이 어려우며 거래 정상화 여부가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계좌 잔액이 반토막이 났음에도 투자자들은 손절조차 못하고 기약 없는 기다림에 빠지게 됐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2월 28일 기준 국내 러시아 펀드의 연초 이후 평균 수익률은 49.1%에 달했다. 최근 높아진 변동성을 한껏 활용해 저가 매수에 나섰던 불나방 투자자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러시아 증시가 곤두박질치자 최근 1주일간 러시아 펀드에는 82억 원이 새로 유입됐다. 전문가들의 우려에도 급락은 기회라며 공격적으로 뛰어든 이들이었지만 ‘환매 중단'이라는 변수 돌출에 스텝이 꼬이게 됐다. 아울러 운용사가 지난달 24일 신청 건부터 신규 설정을 거부하면서 펀드 매수에 실패한 투자자도 속출할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한 증권사의 영업점 지점장은 “러시아 지수가 급락하면서 진입을 시도하려는 고객분들이 있었지만 시장 방향성이 워낙 불분명해 오히려 정리를 권고했다”고 말했다.
국내 유일의 러시아 ETF인 ‘KINDEX 러시아MSCI(합성)’도 앞날이 안갯속이다. ‘KINDEX 러시아MSCI(합성)’는 최근 3거래일 연속 괴리율이 관리 의무 비율을 초과하면서 ‘투자 유의 종목’으로 지정돼 내일부터 3거래일간 단일가 매매가 진행된다. 이 기간 괴리율이 18% 이상 확대되면 거래 정지가 불가피하다.
운용사인 한국투자신탁운용과 한국거래소는 고평가를 해소하고 투자자 피해를 막기 위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응 방안을 찾고 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한시적인 거래 정지, 상장폐지 등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나라 밖도 러시아 상품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최근 미국 운용사 디렉시온은 러시아 지수를 2배로 추적하는 ETF인 RUSL의 상폐를 결정했고 러시아지수를 기초로 한 블랙록의 ERUS ETF는 신주 설정 중단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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