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리스크에 증시가 연일 출렁이고 있지만 일부 국내 투자자들은 오히려 러시아 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를 급격히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러시아 관련 레버리지 상품들은 상장폐지가 예정된 가운데 증권사들이 경고에 나서고 있지만 단기 차익을 거둘 심산으로 상품들을 매수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일 국내 상장된 유일한 러시아 ETF ‘KINDEX러시아MSCI(합성)'는 120억원이 거래됐다. 이날 기준가는 1만5830원으로 전일 대비 16.68%가 하락했다.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이 ETF의 설정액은 하루 만에 153억 원, 지난 1주일간 201억원이 증가했다. 이 상품의 순자산액이 215억원임을 감안하면 93.5%가 늘어난 셈이다.
해외 상장된 러시아 ETF나 종목에 대한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이날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최근 일주일(2월 24일~3월 2일) 서학개미 순매수 상위 50개 종목에는 러시아 관련 종목 4개가 포진했다. 국내 투자자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담은 종목은 MSCI 러시아지수를 추종하는 ‘아이셰어즈 MSCI러시아(티커 ERUS)’ ETF였다. 지난 일주일 동안 서학개미는 ERUS를 168억 원을 사들여 알파벳(구글), 로블록스, 리비안 등을 누르고 순매수 16위에 올랐다. ‘러시아의 구글'로 불리는 러시아 최대 인터넷 포털 기업 얀덱스도 121억 원어치 쓸어 담았고, 러시아 지수를 2배로 쫓는 레버리지 ETF ‘디렉시온 데일리 러시아 불 2X 셰어즈(RUSL)'를 49억 원어치 사들였다. 이외 MVIS 러시아지수를 1배로 추적하는 ‘반에크 러시아(티커 RSX)’를 81억 원 순매수했다.
그간 관심 밖이었던 러시아 종목에 돈이 몰린 것은 ‘급락을 기회'라며 역발상 투자에 나서는 서학개미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 24일 러시아 RTS지수가 한때 반토막까지 곤두박질쳤고 투자자들은 저가 매수 기회로 인식했다. 지난달 28일부터 3일간 휴장 중인 러시아 증시 지수인 RTS는 휴장 직전 936.94로 고점(1933.59) 대비 48% 이상 하락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전쟁 수위가 전면전까지 치닫지 않고 수일 내 마무리되면서 조만간 지수가 급반등을 이룰 것이라 기대했다. 한투운용 관계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극적 합의가 이뤄질 경우 러시아 증시가 대폭 상승, 차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에 거래가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국지전 수준을 넘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 수위를 높였고 서방도 고강도 제재를 내놓았다. 지난 28일(현지시각) 나스닥과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얀덱스, 키위, 사이언PLC, 모빌 등 러시아 기업들의 주식 매매를 중지시켰고, 러시아 증시에 대한 투자 제약이 많아졌다는 이유로 RUSL은 상장 폐지를 발표했다. 주가 변동성이 높아진 국면을 활용해 ‘단타’에 나섰던 얀덱스 투자자들은 발이 묶였고, 상폐 소식에 RUSL은 최근 3거래일간 71.4% 폭락했다.
현재까지 정상 거래가 가능한 러시아 ETF의 수익률은 참담하다. ERUS는 2일(현지시각) 10.82달러에 마감해 최근 5거래일 동안 63.5% 급락했고, RSX도 이 기간 62.2% 밀려났다. 전문가들은 러시아 투자에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산적해 있다며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28일부터 휴장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NH투자증권은 ‘러시아 소재 기업 및 ETF 매매 시 사전 예고 없이 주문이 거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키움증권은 KINDEX러시아MSCI의 신용매매를 중지하고 100% 위탁증거금이 있을 때만 거래를 허용했고, 거래소는 최근 3거래일 연속 괴리율이 관리 의무 비율을 초과하면서 ‘투자 유의 종목’으로 지정해 3거래일간 단일가 매매를 결정했다. 이 기간 괴리율이 18% 이상 확대되면 거래 정지가 불가피하다.
박승진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국내 러시아 펀드들의 신규 매수, 환매가 중단됐고 러시아 국채 기발행물도 거래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역발상 투자도 좋지만 상황을 살펴보며 투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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