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에 국제 유가가 8년 만에 최고가를 찍었다. 제철용 원료탄, 철광석 등 원자재 가격도 치솟고 있다. 대부분 원자재를 수입해 쓰는 국내 산업계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항공·해운 업계는 원유값 급등에 따른 연료비 부담, 석유화학 업계는 나프타 가격 인상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냈던 철강 업계도 비용 부담 우려가 커졌다.
2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1일(현지 시간) 전날보다 배럴당 8%(7.69달러) 급등한 103.41달러에 거래됐다. WTI가 100달러를 넘긴 것은 2014년 이후 8년 만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가 확산하며 원유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러시아는 세계 3위 산유국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서방국가들의 러시아 제재가 가시화하면서 유가는 연일 치솟고 있다. 시장에서는 서방국가들의 제재로 러시아산 원유 수출이 50% 줄어들 경우 유가는 150달러까지 폭등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우선 타격이 큰 건 항공·해운 업계다. 항공유의 경우 국제 유가 반영 속도가 빠르다. 유가가 배럴당 60~80달러를 오갔던 지난해를 기준으로 대한항공은 연료비로 1조 8000억 원을 썼다. 이는 2020년 1조 2474억 원 대비 44.3% 늘어난 수치다. 올해도 유가 상승세가 이어질 경우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해운사 부담도 만만찮다. 통상 컨테이너선사 매출의 10~25%가 유류비다. 해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두 달 사이 운임은 떨어지는데 유가는 오르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며 “수익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냈던 철강 업계도 난처한 표정이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원자재값 인상분을 철강 제품 가격으로 전가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올해 들어서는 세계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며 가격 인상이 쉽지 않아서다. 반면 원자재값은 4달 연속 오르며 철강 업계의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1일 톤당 101.4달러에 거래됐던 북중국(CFR) 철광석은 1일 144.45달러로 42%가량 올랐다. 동호주 항공(FOB) 제철용 원료탄도 지난해 12월 1일에는 톤당 317.79달러에 거래됐지만 1일에는 43.7% 오른 456.75달러까지 급등했다. 박성봉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러시아의 침공 중단과 주요국들의 제재 해소 전까지는 철강 원재료 및 제품 가격 상승 원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대다수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 든 석유화학 업계의 공포는 날로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할 우려가 커지며 ‘초고유가’ 시대가 도래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다. 러시아산 나프타 수입 비중이 높은 석유화학 업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원유에서 뽑아내는 나프타는 플라스틱·섬유·고무 등 소재의 기초 원료가 되며 거의 모든 소비재에 나프타를 원료로 한 제품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이 사용하는 나프타 중 수입산 비중은 약 20%에 이른다. 이 가운데 약 23%가 러시아산이다. 러시아산 나프타 수입이 제한되면 다른 나라의 나프타로 수요가 몰리면서 추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곧바로 석유화학 업계의 원가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화학사들은 수개월 단위로 재고를 확보해놓기 때문에 당장 직접적 영향은 없더라도 러시아산 원유 도입 차질 가능성에 대비해 중동·남미 등 다른 지역으로 공급선을 다변화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신용평가는 보고서를 통해 “우크라이나 사태 악화는 석유화학 수급이 부진한 상황인 점을 고려하면 국내 석유화학 산업에 부정적”이라며 “원재료 조달 차질 등으로 유럽 석유화학 설비 가동률이 낮아질 경우 시장 내 공급 물량이 감소하며 국내 업체들도 반사이익을 얻을 수는 있으나 글로벌 경기가 위축돼 석유화학 수요가 감소하면 긍정적 효과도 반감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종갑·전희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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