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액이 2억 4000만 달러 늘며 넉 달 만에 증가 전환했다. 석 달째 이어지던 감소세는 가까스로 멈췄지만 소폭 증가에 그치면서 국제기관에서 권고하는 적정 수준에는 여전히 못 미치는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위기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의 긴축 등으로 국제 금융시장 변동성이 점차 확대되는 만큼 외환보유액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월 말 기준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617억 7000만 달러로 지난 1월 말(4615억 3000만 달러)보다 2억 4000만 달러 증가했다.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10월 말 4692억 1000만 달러로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한 뒤 석 달 내내 감소세를 보이며 75억 달러 넘게 줄어들었다. 다만 지난달에는 일부 운용수익과 함께 미국 달러화 가치(-0.7%)가 소폭 낮아지면서 기타통화 외화자산의 미 달러 환산액이 늘어났다는 설명이다.
자산별로 살펴보면 국채·정부기관채 등 유가증권은 4108억 4000만 달러로 전월 대비 17억 7000만 달러 증가했다. 반면 예치금이 262억 달러로 전월 대비 15억 6000만 달러 줄면서 증가 폭이 상쇄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과 IMF에 대한 교환성 통화 인출권리인 IMF 포지션은 각각 3000억 달러, 1000억 달러 늘어나는 데 그쳤다. 금은 시세를 반영하지 않고 매입 당시 가격으로 나타내기 때문에 전월과 같은 47억 9000만 달러다.
문제는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IMF나 국제결제은행(BIS) 등에서 권고하는 적정 수준에 비해 적다는 것이다. IMF의 외환보유액 적정성 평가(ARA)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는 0.99로 기준에 미달했다. 더욱 엄격한 BIS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 적정 외환보유액은 최소 9000억 달러 이상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외환보유액 비중도 28%로 세계 최하위권이다.
현금성 자산 비중이 낮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19년 기준 국외운용 외화자산의 현금성 자산 비중은 4.6%다. 운용 중인 외화자산의 환금성이 낮으면 외국 자본이 이탈할 경우 즉각적인 대처가 쉽지 않다. 세계 4위 외환보유액 보유국인 러시아(6302억 달러·1월 기준)가 루블화 가치 하락에 대응해 즉각 쓸 수 있는 외화는 120억 달러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은은 현금성 자산뿐 아니라 투자 자산도 유동성과 안전성이 높은 자산으로 운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에는 중앙은행에 대한 기후 변화 대응 요구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투자를 늘리고 있는데 이러한 움직임이 외환보유액 운용 목표인 안전성·유동성·수익성과 배치된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우리나라는 기축통화국이 아닌 데다 외환보유액 규모 자체도 적정 수준의 절반밖에 되지 않고 이 가운데 현금성 자산도 얼마 되지 않는다”라며 “대만은 누구도 믿지 않고 외환보유액 대부분을 현금성 자산으로 보유하는 만큼 최근 러시아 사태를 봤을 때 우리나라도 현금 비중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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