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교통량 감소로 타격을 받은 주유소 시장에 '유가 급등'이라는 또 하나의 악재가 겹쳤다. 휘발유 소비자 가격이 덩달아 상승하며 주유소 매출도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정부의 주유소 지원 대책이 알뜰주유소 위주로 제시되면서 직영·자영 주유소들은 더 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전기·수소차 수요가 늘어나는 장기적 흐름 속에서 주유소들이 고사하지 않기 위해서는 업계 변화에 발맞춘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주유소 사장들 “10원 차이로 고객 놓쳐…유가 급등해도 가격 바로 못 올려”
서울경제 취재진이 4일 서울 일대의 주유소 8곳을 취재한 결과 주유소 사장들은 최근 급등한 유가로 인해 큰 타격을 받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브렌트유 가격은 지난 3일 배럴당 112.93달러를 기록했다. 브렌트유 가격이 100달러를 돌파한 것은 2014년 이후 처음이다. 서울 마포구의 주유소 사장 A씨(50대)는 "코로나로 돌아다니는 차들도 줄었는데 기름값까지 올라서 매출이 많이 떨어졌다"며 "주유소 고객들은 기름값 차이가 10원만 나도 더 싼 주유소로 가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가격을 올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서대문구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B씨도 "기름값이 올랐다고 손님들의 불만이 폭주하고 있지만 실제 국제유가가 오르는 속도에 비해선 천천히 올리고 있다"며 "국제유가가 30원 오르면 주유소 기름값은 10원씩 올리는 식"이라고 전했다. 주유소협회가 집계하는 전국 주유소 개수는 유가 외에도 출혈 경쟁, 교통량 감소 등의 요인으로 2017년 1만 1777개에서 지난해 11월 1만 1160개로 감소하는 추세다.
알뜰주유소 집중된 지원책에 직영·자영주유소 불만…신청해도 10곳 중 4곳만 전환
직영·자영 주유소는 좋지 않은 업황 속에서 정부가 알뜰주유소 위주의 주유소 지원책만 내놓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정부는 △올해 중 알뜰주유소로 전환한 주유소에 대한 중소기업 특별세액감면율 한시 상향 △수도권 도심부의 알뜰주유소 간 이격거리 조건 완화(현행 1㎞) 등의 정책을 지난해 말부터 추진하고 있다. 고유가 흐름 속 가격이 저렴한 알뜰주유소를 진흥시키겠다는 취지에서다.
은평구에서 주유소를 운영 중인 40대 사장 C씨는 "알뜰주유소는 공동구매로 기름을 싸게 공급받아 가격 경쟁에 유리한데 알뜰주유소가 더 많아지면 나머지 주유소들은 죽으라는 소리"라고 비판했다. 물론 정부가 지난 4일 유류세 인하 조치를 7월까지 석 달 더 연장하는 등 유가급등 대책도 병행하고 있지만, 주유소 지원책이 알뜰주유소에 초점을 맞췄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셈이다.
알뜰주유소 전환이 쉽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알뜰주유소로 선정되려면 1㎞ 이격거리 제한 요건 충족은 물론 세차장 의무 및 법규 준수 등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석유공사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507개의 주유소가 알뜰주유소 전환을 신청했지만 196곳(39.8%)만 전환되는 데 그쳤다. 업계에서는 공적 지원이 이뤄지는 알뜰주유소가 지나치게 많아지면 시장 교란이 일어나는 만큼 정부가 사실상 알뜰주유소 총량제를 실시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알뜰주유소 “고유가 시대에 우리도 어려워”…전문가 “전기차 충전도 가능하도록 발전해야”
그렇다고 해서 알뜰주유소의 상황이 마냥 좋은 것만도 아니다. 영등포구에서 알뜰주유소를 운영 중인 D씨는 2월 들어 석유공사에서 공동구매해 공급받는 가격이 현물보다 비싸지는 경우도 생겼다"면서 “예전에는 일반주유소에 비해 리터당 100원까지 저렴하게 판매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알뜰주유소는 직영·자영주유소에서 제공하는 부가서비스가 없는 대신 저렴한 가격이 경쟁력인데 유가 급등 상황 때문에 이제 가격 경쟁력을 갖췄다고 하기도 어렵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주유소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기차 보급 확대 등 장기적인 업황 전망에 맞춰 적극적으로 발전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현재로서는 주유소의 생존권 자체가 위험한 상황”이라며 “전기·수소차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만큼 주유소도 전기와 수소 충전이 가능한 '슈퍼 스테이션'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에 확보된 주유소 인프라를 활용하면 국가 입장에서도 추가지출을 할 필요가 없어 효율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