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메타버스와 로봇의 향연이었다. 프랑스 1위 통신사 오렌지가 선보인 메타버스 미니카 레이싱 체험존에서는 놀이 공원에 온 듯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SK텔레콤(017670)의 4D 도심항공교통(UAM) 체험은 전시 내내 긴 대기줄이 사라질 줄을 몰랐다. 스페인·중남미 1위 통신사 텔레포니카가 선보인 5G 바텐더 로봇 앞에선 ‘로봇 칵테일’을 마셔보고자 하는 인파가 구름처럼 몰려 들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샤오미가 선보인 1500달러의 저가 로봇개 ‘사이버도그’ 곁에는 방송 카메라가 떠날 줄을 몰랐다.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MWC 2022가 지난 4일(현지 시간) 폐막했다. 올해 전시 화두는 단연 ‘메타버스’와 ‘로봇’이었다. 3년 만의 오프라인 전시회를 맞아 글로벌 통신사·제조사 부스 대다수가 새로운 미래를 잇따라 선보이며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증강·가상현실(AR·VR) 헤드셋 ‘오큘러스 퀘스트’를 보유한 메타(옛 페이스북)를 비롯해 바르셀로나에서 프랑스 파리의 미니카로 레이싱을 하는 5G VR 서비스를 선보인 오렌지, 스마트폰 대신 자사 칩셋이 적용된 AR·VR 기기를 대거 전시한 퀄컴 등이 눈길을 끌었다. 중국 기업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화웨이는 자사 AR 안경 '스마트글래스'를, 오포는 이달 출시하는 AR 기기 '에어글라스'를 전시했다. 에어글라스는 안경 형태로 무게가 30g 밖에 되지 않는다. 로봇 관련 전시로는 바텐더 로봇을 선보인 텔레포니카, 자체 제작한 사이버도그를 시연한 샤오미,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스팟’을 들고 온 IBM 등이 주목 받았다.
글로벌 제조사·통신사들이 메타버스와 로봇에 ‘올인’하는 배경에는 5세대 이동통신(5G) 보급이 있다. 5G는 초고속·저지연성이 장점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모바일 웹서핑·동영상 감상 환경에서는 기존 4G와 큰 차이를 느끼기 힘들고 통신료는 더 비싸다. 5G 보급을 위해 대규모 인프라 투자에 나선 통신사 입장에서는 5G 효용을 이용자들에게 ‘설득’해야 한다.
대용량 데이터를 실시간 전송해야 하는 메타버스와 원격 작업을 저지연으로 이뤄내야 하는 산업용 로봇은 각각 소비자(B2C)와 기업(B2B)에게 5G의 필요성을 역설할 소재인 셈이다. MWC 2022 현장에서 만난 황현식 LG유플러스(032640) 대표는 “3년 전 MWC 2019에서는 5G 자체에 집중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많은 통신사들이 5G로 어떻게 실질적인 고객가치를 제공할지 소개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내 통신사 중에서도 SK텔레콤이 메타버스에, KT(030200)가 로봇에 역점을 두고 실제 사업을 적극 진행 중이다. 이번 행사에서도 SK텔레콤이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와 함께 VR 도심항공교통(UAM) 체험 어트랙션을 설치해 큰 인기를 끌었다. SK텔레콤 전시에는 총 2만 명이 찾아, 전시 내내 긴 줄이 늘어섰다. KT도 AR 서비스 ‘리얼 댄스’와 방역로봇 등을 선보여 호응을 이끌었다. LG유플러스도 확장현실(XR) 콘텐츠를 앞세워 글로벌 비즈니스 기회를 모색했다.
국내 통신사들이 메타버스·로봇으로 좋은 반응을 얻은 것과 달리, 이에 발 맞춰야 할 제조사들은 존재감을 보이지 못한 점이 아쉽다. 매년 MWC에서 신제품을 공개해왔던 LG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철수하며, 올해 행사부터는 불참하게 됐다. 삼성전자(005930)는 대규모 부스를 꾸미고 신형 노트북 ‘갤럭시북2 프로’를 공개했지만 전시물은 모두 모바일 기기였다. 메타버스·로봇 등 ‘첨단 기술’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삼성전자는 최근 수년간 글로벌 전시회에서 ‘삼성 봇’ 시리즈를 선보여왔다. 웨어러블 보행 보조 로봇 ‘젬스’도 선보인 바 있다. 그러나 제품 출시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고 있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 1위지만 본격적인 메타버스 기기를 선보인 적도 없다. 그 사이 경쟁사들은 실제 작동하는 로봇을 판매하고 있다. 날로 성장하는 AR·VR 기기 시장의 75% 가량은 오큘러스가 점유한 상황이다. 다행히 이번 행사에서 한종희 삼성전자 DX부문장 부회장은 “메타버스 기기를 준비하고 있다”며 시장 참여 의사를 밝혔다. ‘삼성봇’ 상표권 출원과 관련 기업 투자 소식도 들려온다. 삼성전자가 지금부터라도 빠른 대응에 나서, 시장 변화에 뒤쳐지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래본다. 바르셀로나=윤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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