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동해 시내에서 23㎞ 떨어진 동해시 신흥동 신흥마을. 서울경제 취재진이 7일 화마로 강원도 일대를 뒤덮은 연무를 뚫고 마을 입구로 들어서자 멀리 백봉령 인근 야산에서 짙은 회색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동해시와 정선을 잇는 산촌으로 농촌체험휴양마을로 유명한 신흥마을은 며칠째 이어진 화재로 전일 주민 대피령이 내려지면서 소방차와 군용차량, 경찰 차량이 끊임없이 이동하는 전장을 방불하게 했다.
4대의 산림청 헬기가 끊임없이 마을 어귀 식수원인 달방댐에서 물을 실어나르고 있었지만 화재를 진압하기에는 힘에 부치는 모습이었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주민 A 씨는 “어제 동해 시내에 있는 아들의 아파트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돌아왔는데 화재가 진정되지 않아서 걱정이 많다”며 “아직 봉우리 정상 부근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지만 언제 마을을 덮칠지 모르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산림청 헬기가 쉴 새 없이 물을 뿌려대도 주불이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인근 군인들과 경찰력이 총동원됐다. 40여 명의 동해해양경찰서 관계자들은 각자 살수 배낭을 메고 백봉령을 오르기 시작했다. 수십 명의 군인과 의용소방대원도 살수차와 펌프 등을 이용해 잔불 진압에 나섰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한 산불감시원은 “신흥마을은 원래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이 아닌데 강릉 옥계에서 불이 내려오며 이곳까지 번져나간 것”이라며 “주요 화재가 봉우리에서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헬기가 더 동원됐으면 좋겠지만 동해안 전역이 화재라 추가 배치를 요구하기 어려운 실정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까지 1만 9553㏊의 산림 피해가 추정된다. 피해 면적은 이미 서울 면적(6만 500㏊)의 3분의 1 이상을 넘었고 여의도 면적(290㏊)의 67.4배에 해당한다. 산불로 대피한 주민은 같은 시간 기준 4659세대 7355명으로 집계됐다. 공공시설·마을회관·경로당 등 임시주거시설 18곳에 436세대 485명이 대피했다.
동해안 일대 산악지대를 집어삼킨 화마는 우리 민족의 기상인 금강송 군락지까지 위협했다.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산불이 나흘째 이어지며 전날 불길이 금강송 군락지에서 불과 500m까지 다가왔다. 소방 당국이 야간 진화 인력까지 투입하며 전력을 다한 결과 일단 저지선은 지켰다. 최병암 산림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울진군 서면 소광리 일대에 야간 진화 인력을 투입하는 등 금강송 군락지 방어에 모든 힘을 쏟은 결과 화선 방어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본지가 이날 방문한 금강송 군락지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소방관들이 비상대기하고 있었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약 2㎞ 떨어진 두천2리, 용천사 등지에서 산불이 산발적으로 일어 언제 화마가 군락지를 삼킬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금강송 군락지는 축구장 2200여 개가 넘는 1600㏊에 이르는 거대한 소나무 숲이다. 200년 이상 된 나무가 8만 그루가 넘을 정도로 숲이 우거져 있지만 진출입로가 마땅치 않아 진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날 비상대기로 파견된 수십 대의 소방차들도 산길 진입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산불 방재를 위한 도로가 뚫려 있지만 외길인데다가 포장도 되지 않아 3000ℓ의 물을 싣는 대형 소방차가 진입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특히 산불 진화에는 헬기가 필수지만 바람이 세게 불면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번지고 바람이 잔잔해도 연기가 빠지지 않아 시야 확보가 어렵다는 게 가장 큰 애로 사항이다. 한 소방관은 “연기가 자욱하게 끼는 바람에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오전에 헬기 이륙이 지연되기도 했었다”며 상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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