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국가의 대(對)러시아 경제 제재가 중국 기업들에 타격을 주기 시작했다. 루블화 가치 하락 등의 여파로 화웨이·샤오미 등 중국 스마트폰 제조 업체들의 러시아 수출 물량이 급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9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샤오미·화웨이·오포의 대러시아 선적 규모가 절반으로 줄었다고 보도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정작 중국 기업들에는 적잖은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FT는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고 있는 데다 중국이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지 않는 데 대한 서방 국가의 제재 우려 속에 중국 기업들이 대러 스마트폰 선적 규모를 줄이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은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의 60%를 점유해왔다. 최근 애플과 삼성이 러시아에서 판매를 중단함에 따라 빈자리를 중국 업체들이 채울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지만 쉽지 않은 셈이다.
우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루블화 가치가 미 달러화 대비 35% 폭락한 것이 악재가 됐다. 러시아에서 판매하는 제품 가격의 인상 압력이 그만큼 커진 것이다. 홍콩 컨설팅 기업인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아이반 램 애널리스트는 러시아의 스마트폰 공급 업체들이 환율 때문에 중국산 제품 주문을 중단한 상태라고 밝혔다. 화웨이의 전직 임원은 “현재 러시아에서 영업하기에는 너무 리스크가 크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미국이 중국을 대상으로 ‘세컨더리보이콧’을 단행할 수 있다는 점도 중국 기업을 위축시키고 있다. 앞으로 부품을 비롯한 미국산 제품의 대러시아 수출이 금지될 수 있으며 중국이 이를 위반하면 과거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 같은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그는 지난 2018년 화웨이가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캐나다에서 3년간 억류됐다가 지난해 9월 풀려났다. 중국 스마트폰 업체로서는 러시아 시장 규모를 고려할 때 위험을 감수하기 힘들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다만 샤오미의 전 임원은 " 애플·삼성처럼 러시아 시장에서 판매 중단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일"이라며 “지금은 상황을 관망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