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유일의 구리 가공 업체인 A 사는 한국광해광업공단이 ‘코브레파나마’에서 생산한 구리를 매입하려다 결국 접었다. 하루가 다르게 구리 가격이 뛰고 있는 터라 조기 매입을 타진했지만 국가계약법에 발목이 잡힌 탓이다.
현행법은 공공기관인 광해광업공단이 광물을 판매할 때 입찰자를 복수로 모집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보니 A 사 외에는 광물을 다루는 국내 기업이 없어 입찰 자체가 무산된 것이다.
“공개 입찰이 적어도 세 번은 무산돼야 수의 계약으로 전환이 가능하다”는 공단의 설명에 A 사는 해외 판매 업체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A 사에서 구매 업무를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수의 계약이 가능할 때까지 기다리려면 적어도 한 달 이상은 걸린다”며 “한 달 새 광물 가격이 톤당 수백 달러씩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한가하게 입찰 조건이 완화되기까지 기다릴 여유가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정부가 국가계약법상 특례를 신설해 입찰 초기부터 단독 입찰을 허용하기로 한 것은 이 같은 일이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구리뿐만 아니라 주요 광물을 취급하는 업체는 종별로 많아야 두어 곳에 불과하다. ‘자원 대란’이 현실화하는 상황에서 복수입찰제를 바로잡지 않으면 수급 불안을 부추길 수 있다고 정부는 보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상황을 고려해 국가계약법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전부터 많았지만 특례를 신설하는 게 자칫 특정 업체에 대한 특혜로 비칠 수 있어 정부가 개정에 소극적이었다”며 “하지만 지난해부터 원자재 가격이 급등해 정부가 입장을 선회한 것 같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글로벌 자원 수급난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러시아가 전 세계 생산의 11%를 차지하는 니켈 가격만 해도 지난해 톤당 1만 8488달러(한국자원정보서비스 기준)에서 지난달 2만 4000달러 선까지 치솟았다. 세계 2위 알루미늄 제련 업체인 러시아 루살이 알루미늄을 제때 수출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알루미늄 가격도 이달 7일 톤당 3984.5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광물 수급난이 이미 배터리 등 국내 기업에 부담으로 전이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태껏 방관했던 제도적 모순을 손봐야 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정부는 이번 조치로 민간 자원 기업의 조달 창구에 숨통이 트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갈수록 오르는 광물 가격을 감안해 계약이행보증금을 면제해주는 안도 추진할 계획이다. 계약이행보증금은 민간 기업이 공공기관의 물량을 구매할 때 담보로 잡는 일종의 선급금으로, 당장 보증금을 낼 여력이 없는 기업의 사정을 고려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일단 광물을 제련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다면 기업의 수입을 지원하겠다는 취지”라면서 “광해광업공단이 해외 자산에서 생산한 물량을 창고에 쌓아 두기보다는 가능한 활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글로벌 공급망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해외 광산 매각 방침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광해광업공단이 보유한 마다가스카르의 암바토비 광산과 파나마 코브레파나마 광산 등을 일종의 해외 비축 기지로 삼아 비상시 국내로 물량을 우선 돌리기 위해서다. 공단에 따르면 암바토비 광산에서는 연간 최대 4만 8000톤의 니켈이, 코브레파나마 광산에서는 35만 톤의 구리가 생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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