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이 직접 나서는 구조에서는 해외 자원 개발이 정치권의 입김에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정부가 직접 해외 자원을 개발하는 대신 민간의 해외 진출을 돕고 민간이 해외에서 도입한 물량을 유연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시장 제도를 개편해야 합니다. 첫 단계로 자유로운 거래를 막는 규제를 없애야 합니다. 관련 거래소 설립도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자원경제학회장인 박호정(사진) 고려대 교수는 그간 우리나라 자원 개발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톱다운 형식의 정책 수립 구조’를 꼽았다.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해외 자원 개발과 매각이 결정되면서 자원 개발 자체가 정권의 명운과 함께하는 폐단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자원 개발에 있어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모든 패를 전 세계에 드러내 놓고 진행했다”며 “이 때문에 광구를 사들일 때 프리미엄이 붙고 팔 때 제 값을 못 받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자원 개발 자체가 공기업이 나서기 힘든 구조라고 지적했다. 매년 기획재정부의 경영 평가와 국회의 국정감사를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전략이 다 노출되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자원 개발 정책에서 그간 정부와 공기업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이제는 민간이 전면에 나서고 정부는 뒤에서 민간을 지원하는 형태로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자원 개발은 국제 정세의 영향을 많이 받아 변동성이 매우 큰 만큼 민간이 나서기에 위험이 크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그런 만큼 민간의 역량을 키워 나가야 한다는 게 박 교수의 주장이다.
박 교수는 “자원 분야는 첨단 금융 기법과 고도의 계약 구조, 여러 파생 상품들을 아우르는 금융의 꽃인데 그간 우리 기업들은 이에 지나치게 무지했다”며 “정부의 금융·세제·정보·외교 지원이 있으면 민간 기업의 역량도 단기간에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주식시장에서 서킷브레이커처럼 여러 안전장치를 두며 시장 개방을 진행하면 부작용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 개방의 첫 단계로 자원 거래를 제한하는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봤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액화천연가스(LNG) 4000만 톤 이상을 수입해 중국·일본에 이어 LNG 3위 수입국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이 가운데 민간의 역할은 미미하다. 한국가스공사가 전체 수입 물량의 약 80%를 들여오는데 그 배경에는 도시가스사업법이 있다. 현행 도시가스사업법은 가스공사를 제외한 민간기업은 가스발전소 등 자가 소비용에 한해 제한적으로 천연가스를 도입할 수 있지만 제3자에게 재판매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 수급 관리 등 제한적인 경우에 한해 가스공사에 판매 등을 허용할 뿐이다. 박 교수는 “가스공사 독점 구조에서 벗어나 민간 기업에도 도입 물량 중 일정 부분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거래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자원 분야를 다루는 거래소 설립도 제안했다. 석유, 광물, LNG, 탄소 배출권, 수소 등을 담당하는 ‘한국상품거래소’를 만들어 자원·에너지 허브로 도약한다는 구상이다. 박 교수는 “자원 빈국이지만 아시아 최대의 원자재 거래 시장으로 떠오른 싱가포르의 사례가 있다”며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에너지·광물 소비국인 만큼 경쟁력이 있다”고 밝혔다. 일본과 비교해도 경쟁력이 뚜렷하다. 그는 “일본은 지진이 잦은 특성상 우리나라처럼 큰 비축 시설을 짓지 못한다”며 “상품 거래에서 현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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