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산업에 대한 투자 심리가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초반까지 호황을 누리던 분위기와 달리 최근에는 미국 금리 인상,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등으로 주가는 물론 기업공개(IPO) 여건도 악화됐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는 자사주 매입, 무상증자 등을 통해 ‘투심잡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제약·바이오 관련 업계의 주가가 하락세를 보이는 가운데 올 들어 주요 기업들이 잇달아 주주친화정책을 내놓고 있다. 특히 바이오업계의 ‘유니콘 상장 1호’로 기대를 모았던 보로노이마저 수요예측 부진으로 기업공개(IPO)를 철회하면서 투자심리가 급격히 얼어붙는 모습이다. 보로노이는 지금까지 총 2조 원에 달하는 기술 수출 성과를 바탕으로 유니콘 특례 상장을 추진해왔다. 시가총액을 5000억 원 이상 평가받을 경우 기술성 평가가 한 곳에서만 A등급을 받아도 코스닥에 상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14~15일 기관 배정 물량에 대한 수요예측 결과 투자자 모집에 실패하면서 IPO를 자진 철회했다. 보로노이 측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미국 금리인상 움직임 등으로 인한 대외 시장의 불안정”을 이유로 꼽았다.
상장 기업들은 무상증자, 자사주 매입 등 다양한 방법으로 투자자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랩지노믹스(084650)는 지난 16일 무상증자 200%를 단행했다. 보통주 1주당 신주를 1주 발행해주는 방식으로 기존 발행주식 1133만 541주가 3399만 1623만 주로 늘어나게 된다. 이날 발표와 동시에 랩지노믹스의 주가는 즉시 29.9% 급등했다. 이 회사는 무상증자 이전인 지난 10일 주식 약 12만 주를 소각하기도 했다. 랩지노믹스는 이달 주주총회를 앞두고 소액주주연합으로부터 △자사주 소각과 재매입 △소액주주가 선출한 사외이사와 감사 선임 △200% 무상증자 등을 요구받으며 법적 갈등으로까지 치달을 위기 상황이었다.
휴온스그룹도 지난 16일 휴온스글로벌(084110) 50억 원, 휴마시스(205470) 30억 원 규모의 자사주매입을 발표했다. 앞서 지난 10일 휴온스글로벌을 중심으로 한 컨소시엄이 러시아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인 스푸트니크V의 위탁생산(CMO) 사업을 중단하겠다고 밝히면서 시장 신뢰가 급격히 떨어진 데 따른 것이다. 휴마시스도 지난달 이후 연일 주가가 하락하자 100억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에 나섰다. 차정학 휴마시스 대표는 "회사의 주가 안정뿐만 아니라 진단키트시장의 선두기업으로 지속적인 성장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한올바이오파마(009420)는 100억 원 규모, 일양약품(007570)은 30억 원의 자사주를 매입했다. 특히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던 씨젠(096530)도 주가가 기대에 못 미치며 하락하자 최근 500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취득하기로 했다. 이는 지난해 매입했던 300억 원 보다 규모를 대폭 늘린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금리상승기를 맞아 대표적인 성장주인 바이오 기업들에 대한 투자심리가 얼어붙고 있다”며 “앞으로 제약·바이오 업계는 말 보다는 실적을 내고, 주주 기대에 맞는 친화정책을 실시해야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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