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산업을 육성하고 투자자 보호 방안을 마련하는 움직임은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가장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미국이다.
지난 9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직접 각 관계 부처에 암호화폐 연구를 지시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미 재무부 등 연방 기구가 각각 암호화폐 현안들을 연구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암호화폐 규제 프레임 구축에 공조하자는 게 골자다. 암호화폐에 대한 무조건적인 통제나 규제보다는 업계·소비자와 상생을 도모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암호화폐와 관련된 많은 활동이 기존 국내 법률 및 규제 범위 내에 있지만 미국의 암호화폐 및 관련 혁신의 개발과 적용이 증가하고 있는 데다 위험에 대한 통제가 비일관적이었다”며 “암호화폐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접근법의 발전과 정리가 필요한 시기”라고 행정명령 취지를 설명했다.
이번 행정명령의 주요 내용은 △미국 소비자·투자자·기업 보호 △미국의 국제금융 안정성 보호 및 시스템 리스크 완화 △암호화폐 관련 불법행위 근절 △세계 금융 시스템에서의 미국 리더십 강화 △금융 서비스 접근성 향상 △암호화폐 기술 발전 지원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연구 등 일곱 가지다. 미 재무부와 상무부 등 관련 기관들은 명령일로부터 약 60일에서 180일 이내에 각 사안에 대한 연구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특히 방점이 찍힌 건 CBDC 개발이다. 그간 미국은 CBDC 발행에 중국 등 다른 국가에 비해 비교적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불과 두 달 전 발간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보고서에서도 긍정 또는 부정의 명확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은 바 있다.
하지만 이번 행정명령을 통해 미국도 본격적으로 CBDC 연구에 착수한다.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CBDC 개발에 돌입하면서 디지털 달러 CBDC를 내놓지 않으면 ‘달러 패권’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에 따르면 현재 100개국 이상이 CBDC 실험을 진행 중이거나 시범 운영 중이다.
이번 행정명령에 따라 미국 과학기술정책국장은 재무장관·에너지장관 등과의 협의를 거쳐 CBDC가 미국 금융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행정명령 이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미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번 행정명령은 CBDC 연구와 개발에 긴급성을 부여한다”며 미국의 CBDC 연구 개발이 본격화했음을 알렸다.
바이든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 행정명령은 암호화폐에 대한 행정부 작업의 결말이 아니라 시작을 알린다”면서 “생태계가 진화함에 따라 우리의 접근 방식도 진화할 것”이라며 미국의 암호화폐 주도권 지키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음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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