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가 온세미컨덕터 부천 실리콘카바이드(SiC) 반도체 거점에 투자하는 가장 큰 배경은 ‘공급망 다변화’다. 극심한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을 타개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테슬라가 국내에서 전력반도체 생산을 해온 온세미컨덕터 부천 공장의 안정성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분석한다. 또 테슬라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진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등 굴지의 배터리 업체와 유기적 협력이 용이해져 배터리 업계에도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번 사례로 한국의 자동차 공급망이 글로벌 시장에서 약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차세대 사업을 이끌어 갈 고급 인력 양성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테슬라, 한국을 차세대 반도체 거점 활용
온세미컨덕터 부천 공장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99년까지 삼성전자 전력반도체 사업 부문 생산 라인이었던 이 공장은 페어차일드를 거쳐 지금의 온세미컨덕터가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이곳의 전력반도체 생산 이력은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힌다. 또 온세미컨덕터의 차세대 반도체 사업인 SiC 반도체 전량이 부천에서 생산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테슬라가 온세미컨덕터의 ‘노하우’에 주목한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테슬라 전기차 안에 들어가는 SiC 전력반도체의 대다수는 스위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의 제품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 차량용 반도체 공급망이 마비 수준에 이르게 되자 테슬라는 SiC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다변화 전략을 꾀하며 온세미컨덕터 부천 공장의 문을 두드린 것으로 풀이된다. 수십 년간 전력반도체를 생산해 온 부천 온세미컨덕터 공장의 장점을 높이 산 것이다.
온세미컨덕터는 전력반도체 분야에서는 세계 2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SiC 반도체 분야에서는 ST마이크로, 미국 크리, 독일 인피니언에 이어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번 테슬라 투자를 등에 업고 기존에 주도권을 쥔 업체들과 치열한 경쟁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한국 생산 거점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해지면서 더욱 활발한 투자가 이곳에 집중될 것으로 점쳐진다.
K배터리와 협력도 기대
게다가 국내에는 굴지의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는 점도 테슬라에 매력적이다. 중국 CATL에 이어 세계 2위 배터리 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은 테슬라 전기차 ‘모델Y’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공급한 사례가 있다. 삼성SDI·SK온 등 국내 유력 배터리 회사들도 세계 굴지 완성차 업체들과의 협력으로 배터리 고도화에 나서고 있다.
SiC 전력반도체는 전기차 속 배터리 전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장치다. 따라서 국내 기업의 테슬라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량 증가와 SiC 반도체 생산이 동시에 일어난다면 국내에서 유기적인 공급망이 형성되면서 배터리 연구개발 시간을 단축하거나 모듈 조립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큰 장점이 생길 수 있다.
이번 SiC 반도체 투자는 국내 반도체 생태계 및 전기차 공급망 확대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테슬라는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와 협력해 최첨단 자율주행칩을 한국에서 생산한 이력이 있다. 세계 자동차 시장을 선도하는 업체의 한국 투자 및 국내 기업과의 협력이 늘어나면서 국내 차세대 자동차 공급망 고도화와 내재화 속도가 가팔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또 현대모비스·SK실트론·LX세미콘·DB하이텍 등 차세대 반도체 시대를 대비하는 국내 업체들도 향후 고급 인력을 확보하는 작업이 용이해진다는 장점이 있다. 아울러 각종 자동차 플랫폼 사업을 육성 중인 LG전자 등에도 수혜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구상모 광운대 전자재료공학과 교수는 “이번 온세미컨덕터의 한국 투자에 세계 반도체 업계가 주목할 것”이라며 “온세미컨덕터의 SiC 생산라인 확장은 국내 고급 엔지니어 양성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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