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허용하면서 ‘레몬마켓(저급품만 유통되는 시장)’ 중고차 시장의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현대자동차·기아(000270) 등은 사업을 위한 준비를 사실상 마쳤고 한국GM·쌍용자동차·르노코리아자동차 등도 머지 않아 중고차 시장에 뛰어들 계획이다. 소비자들은 ‘깜깜이 매매’로 소비자 불만이 높던 중고차 시장 생태계가 개선될 것이란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7일 중고차 판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에서 제외해 3년 넘게 끌어왔던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허용했다.
국내 완성차 기업들은 정부의 발표 전부터 이미 기반 작업에 들어간 상태였다. 현대차(005380)와 기아는 이미 자동차 매매업 등록 신청을 마쳤고, 현대차는 지난 7일 중고차 사업의 구체적 방향을 발표하기도 했다.
현대차는 중고차에 대해 ‘저급품’이라는 인식을 개선하는데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현대차가 공급하는 중고차는 성능 검사와 수리를 거친 ‘인증 중고차’만 취급하기로 했다. 인증 대상은 5년, 10만㎞ 이내의 자사 브랜드 차량이다. 국내 최대 수준인 200여 개 항목의 품질 검사를 실시하고 신차 수준의 상품성 개선 과정을 거칠 계획이다. 중고차 시장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관련 정보를 수집·분석한 뒤 종합해 제공하는 ‘중고차 통합정보 포털(가칭 중고차연구소)’도 만든다.
기아도 남은 중소기업사업조정심의회 절차 이후 사업 방향성을 구체화해 공개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이르면 상반기 중으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인증 중고차 구매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소비자들은 허위매물 근절, 차량 정보의 객관적 제공 등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면서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현대차가 소비자가 타던 차량을 매입하고 신차 구매 시 할인해주는 ‘보상판매’를 약속하는 등 기존 중고차 업계에서 보기 어려웠던 서비스도 제공될 예정이다. 이미 수입차 업체들은 인증 중고차 사업을 통해 수익성 확보 뿐 아니라 차량 재구매율을 높여 왔는데 국내 완성차 업체들도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됐다. 경쟁을 통한 소비자 혜택이 늘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기존 중고차 매매 업체들의 반대가 거세다는 게 문제다. 브랜드 파워를 가진 완성차 업체들이 시장에 진입하면 영세한 기존 중고차 업체들은 생존에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같은 반발을 의식해 현대차도 자체 상생안을 마련한 상태다. 현대차는 인증 중고차 대상 외의 매입 물량은 경매 등을 통해 기존 중고차 매매 업계에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시장점유율도 올해 2.5%를 시작으로 오는 2023년 3.6%, 2024년 5.1%로 제한하기로 했다. 자동차산업연합회에 따르면 완성차 5개사의 중고차 시장 진입 시 2026년 합계 시장점유율은 최대 12.9%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완성차 업체가 자사 중고차를 점검하고 수리해 성능을 인증하면 자사 중고차의 가격이 높아지고 신차 가격도 상승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현대차그룹의 중고차 시장 진출로 중고차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개선될 경우 국내 온라인 중고차 시장의 활성화도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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