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추진 과정에서 비롯된 이른바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칼을 뺐다.
수사팀 물갈이로 지지부진했던 진상 규명이 대선이 끝나자 급물살을 타면서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등 권력형 비리에 대한 도미노 수사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25일 서울동부지검 기업·노동범죄전담부(최형원 부장검사)가 강제수사에 착수한 산업부 인사 블랙리스트 의혹은 고발이 이뤄진 지 4개월 만인 2019년 5월 한국전력공사 자회사인 장재원 전 남동발전 사장 등 한전 4개 발전 자회사 전 사장들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끝으로 사실상 멈춰왔다. 해당 사건은 앞서 박근혜 정권 때 임명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에게서 사퇴를 종용한 의혹으로 논란이 일었던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판박이라 주목을 받았지만 수사팀에 대한 좌천 인사 등으로 수사가 사실상 중단됐다.
답보 상태에 빠졌던 사건에 대해 검찰이 본격적인 강제수사에 나서면서 일각에서는 현 정권을 겨냥한 권력 수사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압수수색이 정권 교체 직후라는 미묘한 시기에 이뤄졌다는 점이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시작으로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되는 사건은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이다. 사건을 수사 중인 대전지검 형사4부는 수사 대상자 20여 명 중 현재까지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7명을 재판에 넘겼지만 이와 별개로 백 전 장관 배임교사·업무방해 교사 혐의 기소를 위한 논리를 다듬고 있다. 지난해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노정환 대전지검장이 백 전 장관을 배임교사 혐의로 기소하겠다는 의견을 밝히는 등 현재 수사팀은 해당 사건의 기소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월성 원전 사건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정치 참여를 이끈 사건으로 지목되고 있어 검찰의 수사력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이 밖에 석연찮게 미뤄져온 주요 사건들의 향배에도 관심이 쏠린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기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 수사의 속도에 따라 임기가 1개월여 남은 문재인 대통령도 검찰의 수사선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한수원 노조 지부위원장 출신이자 ‘월성 원전 1호기 부패행위’를 신고한 강창호 탈원전 국정농단 국민고발단 사무총장은 탈원전 의혹과 관련해 문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하면서 이를 지키지 않을 시 정부 임기 종료 후 검찰에 고발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산업부는 검찰의 갑작스러운 압수수색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고발된 지 3년이 더 지난 시점인데다 정권 교체기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산업부 인수위 보고 하루 뒤 전격적으로 이뤄진 압수수색에 조직 전체가 동요하는 분위기다. 산업부 관계자는 “왜 하필 이 시점에 압수수색을 진행하는지 검찰의 의도를 전혀 파악할 수 없다”며 “당연히 수사도 이미 마무리가 된 줄 알았다”고 밝혔다. 산업부는 앞서 2020년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과 관련한 압수수색 과정을 거쳐 실무를 담당했던 공무원 2명이 구속되는 사태를 겪었다. 또 다른 산업부 관계자는 “산업부 내 트라우마로 남은 월성 원전 1호기 사건이 해결되기도 전에 또다시 압수수색을 당하니 참담할 뿐”이라고 토로했다.
여당은 검찰 수사에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며 강력 반발했다.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2년 3월 25일 오전 드디어 검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명목은 탈원전 정책을 위한 인사 비위 혐의와 관련한 압수수색”이라며 “칼끝은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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