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통령선거가 끝났지만 대선 테마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테마의 불씨를 이어가는 것은 윤석열 당선인도, 박빙의 승부를 펼쳐던 이재명 후보도 아닌 안철수 인수위원장이 창업한 보안업체 ‘안랩(053800)’입니다. 차기 정부 국무총리 후보로 거론되면서 안 위원장의 안랩 지분(18.6%)을 둘러싼 '백지신탁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8거래일 연속 10% 이상씩 오른 지난 14~23일의 급등세는 외국인이 만들었습니다. 이 기간동안 외국인은 안랩 주식을 1419억9500만원 어치를 순매수했죠. 안랩에 대한 외국인 매수세에는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사이버전을 벌이면서 컴퓨터 보안 업종의 수혜가 기대된다는 논리도 붙었습니다.
상황이 급변한 것은 외국인이 안랩 주식으로 단기 매매를 통해 차익을 챙기고 빠지면서부터입니다. 개미들이 상승세에 올라타는 시점에 외국인들은 주식 대량보유 공시 이전에 사들였던 주식을 팔아치웠습니다. 이에 이틀 연속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던 안랩은 돌연 하락 반전하며 18% 가까이 추락했습니다. 최근 급등세에도 불구하고 슬금슬금 늘었던 공매도 자금이 주가에 부담을 더하면서 ‘물린’ 개미들의 고통이 커질 전망인데요. 이번 주 ‘선데이 머니 카페’에서는 안랩의 면면과 변화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안철수 총리설'에 달아오른 안랩…창사來 최고가
지난 23일은 안랩에 신기록을 줄줄이 세운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17만5800원에 거래를 마치며 2012년 1월 3일 기록한 역대 장중 최고가(16만7200원) 기록을 10년여 만에 갈아치웠죠. 코스닥 시가총액 순위도 27위로 단숨에 뛰어올랐습니다. 안랩은 이날까지 5거래일 연속 상승했습니다. 이 기간에만 주가가 2배(100.91%)로 뛰었는데요. 안랩은 이달 들어서만 170.46% 올랐습니다.
폭등의 배경에는 외국인 투자가들이 있었습니다. 영국계 투자자문사인 JP모건 시큐리티스와 자산운용사 LGIM이 주식을 대량 사들인 데 이어 미국의 ETF운용사인 퍼스트트러스트가 지분 14%가량을 확보하며 2대 주주로 올라선 것이 확인됐습니다. 주당 매입 단가를 10만원으로 추산하면 약 1400억 원어치 주식을 쓸어 담은 셈입니다. 이달 18일 116만 9606주를 한번에 사들이며 시장의 관심을 모았던 외국인 계좌의 주인이 드러난 것이죠. 퍼스트트러스트는 사이버 보안 관련 상장지수펀드(ETF) 중 가장 규모가 큰 ‘퍼스트 트러스트 나스닥 사이버시큐리티(티커 CIBR)’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CIBR ETF는 시스코·팔로알토·크라우드스트라이크 등 미국의 보안 업체에 집중 투자하고 있으며 안랩도 22일 기준 133만 9623주를 들고 있습니다. 해당 ETF의 순자산은 62억 달러입니다.
안랩에 러브콜을 보낸 것은 퍼스트트러스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JP모건은 이달 17일 기준으로 안랩 주식 53만 8878주(5.38%)를 단순 투자 목적으로 보유 중이라고 공시했고, 영국 자산운용사 LGIM도 이달 지분 5.13%를 매수하며 주요 주주로 올라섰죠.
주요 사이버 보안 ETF들이 안랩을 담게 된 계기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를 향해 무자비한 폭격을 퍼붓고 있지만 그 뒤편에서는 광범위한 사이버전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사이버 공간도 전시 상황에 돌입하면서 고도화된 사이버 보안 체계의 필요성이 크게 대두된 것인데요. 기초 체력도 좋습니다. 안랩은 10년간 꾸준히 성장했습니다. 2011년 연결 기준 약 1032억 원이던 매출은 2020년 약 1782억 원으로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79억 원에서 200억 원으로 늘었습니다.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072억 원, 229억 원으로 전년 대비 16.3%, 14.7%씩 늘었습니다. 자산운용사의 한 관계자는 “자국 사이버 보안업체를 보유한 나라들은 극히 드물다”며 “안랩의 본질적인 가치를 따졌을 때 정치주로 분류되며 오히려 저평가를 받아왔다”고 말했습니다.
백지신탁 드라마에 롤러코스터 탄 주가
그러나 이 같은 업황을 주가 상승의 전부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안 위원장이 국무총리 등 물망에 오른 점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안 위원장이 입각할 경우 지분을 매각 또는 백지 신탁해야 합니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등록 재산 공개 의무자 등 공직자 본인과 그 이해관계자는 3000만 원 이상의 직무 관련 주식을 보유한 경우 임명 2개월 이내에 이를 매각하거나 백지 신탁해야 합니다. 안 대표가 정부 요직에 기용되면 되면 안랩 주식은 직무 관련 주식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은데요. 이 경우 주식은 수탁 기관이 60일 이내에 처분하게 돼 있습니다. 최대주주가 바뀔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인 것이죠.
이에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외국인의 주식 매수가 인수합병(M&A)이나 최대주주 변경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함이라는 다양한 시나리오가 제기됐습니다. 많은 개미들이 이같은 시나리오에 올라타며 주가 상승을 더욱 부채질했습니다.
그러나 총리 입각설이 한풀 꺾이면서 주가도 수직하락했습니다. 지난 24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전날 안 위원장의 총리설을 부인하자 주가는 전일보다 17.52%내린 14만 5000원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장 초반에는 20만 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고가를 새로 썼지만 이후 가파르게 추락하며 상승 동력을 잃었죠.
개미들이 비명을 지르는 사이 대표적인 외국인 단타 창구인 JP모건은 3일만에 지분 5% 가까이를 털고 나갔습니다. 3거래일 사이에 지분율은 5.38%에서 0.79%로 4.59%포인트 감소했죠. 18일 9만원대에서 주식을 산 점을 고려하면 21일 종가(11만4700원)기준 약 114억원의 차익을 남긴 셈입니다.
개미들의 탈출은 쉽진 않을 전망입니다. 주가가 돌연 급락하면서 공매도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기 때문이죠.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 안랩의 공매도 잔액은 574억 원. 1년 전(43억 원)에서 크게 불어난 수준으로 올해 초 대비로도 5배나 늘었습니다.
최근 주가가 급등하면서 안랩에 대한 공매도 거래량은 일별 20억 원 수준으로 소강 상태였습나다. 그러나 이날처럼 하락세에 접어들면 공매도가 늘어나 단기적으로 낙폭을 더 키울 수 있습니다. 시장이 공포감에 사로잡혀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운 시기에는 공매도가 ‘불난 집에 부채질’ 격으로 주가 하락 폭을 키울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안랩의 23일 기준 대차 잔액은 2978억 원으로 3월 7일(966억 원)보다 208%나 급증했습니다. 대차 잔액이란 투자자가 주식을 빌린 후 갚지 않은 물량을 뜻합니다. 대차거래는 국내 금융법상 공매도의 선행 요건이기 때문에 향후 공매도가 얼마나 이뤄질지 추정할 수 있는 선행지표로 해석되곤 한니다.
안랩 정치 테마 꼬리펴 뗄 수 있을까
대선이 끝나고 ‘생명’을 다하는 정치 테마주와 달리 안랩은 향후 안 대표의 입각과 백지 신탁 여부에 따라 주가가 다시 한 번 요동칠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처분을 하게 되더라도 방식은 다양합니다. 장내 매도 방식과 제3자 혹은 경영진 등과의 블록딜 방식입니다. 장내 매도 방식을 택한다면 안랩 주가는 급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특히 그동안 안랩 주가를 지지해온 투자자의 심리에 큰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큽니다. ‘안랩=안철수’라는 인식 때문이죠. 실제로 지난 2017년 안 대표가 “대선에 당선되면 안랩 주식을 백지 신탁하겠다”고 공약하고부터 안랩의 주가는 6거래일 연속 급락세를 보였다.
안랩 상승세를 주도했던 해외 운용사들의 향방도 관심사입니다. 전문가들은 일반적인 외국계 헤지펀드와 달리 수익 목적으로 운용하는 ETF이기 때문에 경영권 공격의 목적으로 지분을 사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만 백지 신탁 이슈로 지배 구조 변동이 심한 걸 틈타 이사진 선임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등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는 남습니다. 2대주주와 3대주주로 올라선 퍼스트 트러스트, LGIM 등 운용사들이 JP모간처럼 단타를 할지, 보안업체로서의 안랩 가치를 보고 장기 투자를 할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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