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양도세 폐지, 물적 분할 후 자회사 상장 시 규제, 가상자산 비과세, 대주주 프리미엄만 인정하는 인수합병(M&A) 및 개인에게 불리한 공매도 제도의 개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대 대선을 치르며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 제시한 공약들이다. 국내 증시가 소액주주의 권익 보호에 유달리 취약하다는 개인투자자들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했던 만큼 1000만 개미들에게 높은 호응을 이끌어냈다.
자본시장과 관련한 윤 당선인의 공약은 큰 틀에서 이견이 많지 않다. 금융 투자 업계의 전문가들이 오래전부터 지적해 왔던 국내 자본시장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장치들이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현실에 맞게 공약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주식 양도세의 전면 폐지다. 이는 가뜩이나 국내 증시가 미국 등 해외 증시 대비 투자 매력도가 떨어진다는 불만이 나오는 상황에서 그간 내지 않았던 세금까지 물린다면 자산가들의 국내 증시 이탈이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한 해법이었다.
하지만 전면 폐지안은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조세 형평성과 거래세 대신 양도세를 부과하는 글로벌 트렌드에 역행한다. 현 정부는 내년부터 개인·대주주를 구분하지 않고 5000만 원이 넘는 주식 양도 차익에 대해서는 20~25%의 양도세(금융투자소득세)를 부과할 계획이었다. 대신 증권거래세는 올해 0.23%에서 내년 0.15%로 0.08%포인트 인하할 방침이었다.
금융 투자 업계와 정치권에서는 기존 과세안과 윤 당선인 공약의 절충안을 놓고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장기적으로 과세 제도 선진화와 조세 형평성을 위해 양도세 체계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현재 증시 여건을 고려할 때 기존 과세안을 강행하면 증시에 큰 부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주식 양도세 도입 시기를 유예하는 안이나 양도세 부과 기준을 5000만 원에서 상향하는 안 등이 절충안으로 거론된다. 우선 야권에서는 양도세 도입을 미루되 ‘큰손 개미’에 대한 양도세 부과 기준인 종목당 10억 원을 올리는 방안이 부각되고 있다. 그동안 코스피 종목의 1%(코스닥 2%)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거나 연말 기준 종목별 보유 금액이 10억 원 이상인 ‘세법상 대주주’에 대해서는 20~30%씩 양도소득세가 부과돼 왔다. 이로 인해 연말마다 개인 큰손들의 양도세 회피 매물이 쏟아지며 증시가 몸살을 앓았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당선인은 ‘부자 감세’가 아닌 ‘개미 감세’를 하자는 취지”라며 “양도세를 없애면 수요 기반이 확충되고 이는 증시 부양으로 이어져 결국 개인투자자들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 의원은 또 “국내 증시의 수요 기반이 약한데 선진국처럼 양도세를 전면 부과하기에는 이르다”며 “양도세를 아예 도입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없어질 때까지 천천히 도입하자는 것이 공약의 뜻”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대안으로 내년부터 양도세를 도입하되 양도세 부과 기준을 대폭 상향하는 안도 검토할 만하다. 법안 마련 당시에도 부과 기준 2000만 원에 대한 투자자들의 반발이 거세자 5000만 원으로 올린 바 있다. 조세 제도의 일관성을 고려해 예정대로 시행하고 대신 부과 기준을 1~2억 원 등으로 대폭 올려 충격을 완화하자는 취지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금융투자소득세 과세를 위해 진행하고 있던 전산 개발 등이 올스톱됐다”며 “새 정부에서 조속히 방안을 마련해 혼란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배주주만이 이익을 보는 물적 분할과 경영권 프리미엄 관행을 손보겠다는 공약에 대해서도 ‘원칙은 공감하지만 각론은 살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선인은 기업의 일방적인 물적 분할과 자회사 상장으로 모회사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보는 일을 막기 위해 △분할 자회사의 상장을 엄격히 제한하고 △상장 시에는 모회사 주주에 신주인수권을 부여하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하겠다는 내용 등을 약속했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소액주주를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어떻게 구체화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특히 사정이 제각각 다른 회사들을 단일한 잣대로 규제하는 것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물적 분할을 규제할 경우 기업들의 자금 조달 통로가 막혀 기업의 투자나 발전이 저해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상장협의 한 관계자는 “물적 분할 후 동시 상장이 이뤄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보호 수단이 국내에 부재하기 때문”이라며 “물적 분할 없이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기 위해서는 최대주주가 추가로 출자하거나 큰 폭의 지분율 하락을 감수하거나 투자를 포기하는 등 세 가지 선택지를 강요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물적 분할을 하지 않아도 기업이 원활하게 자금 조달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마련해 주는 것이 우선”이라며 “현재는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규제만 강화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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