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윤석열 정부는 부동산 문제만큼은 ‘ABM(Anything But Moon·문재인 정부가 하던 것 빼고 뭐든지)’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실정(失政)으로 비정상이 된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하겠다고 공약한 만큼 차별화된 정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윤 당선인의 공약을 보면 각종 규제로 점철돼 반(反)시장 기조였던 문 정부와는 정반대되는 규제 완화가 대부분이다.
지난 5년간 각종 규제와 수요 억제를 통해 집값 잡기를 꾀했던 문 정부와 달리 윤 당선인은 충분한 주택 공급과 규제 완화를 통해 시장 안정을 추구한다. 그는 최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의 국토교통부 업무 보고에 깜짝 등장해 주요 부동산 규제 완화 기조를 재확인하기도 했다. 시장 친화적이란 점에서 긍정적이긴 하지만 윤 당선인의 부동산 공약에도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대목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30년 이상 노후 공동주택에 대한 정밀안전진단 면제나 역세권 민간 재건축 용적률 500% 상향 등이다. 특히 안전진단 관련 규제의 경우 법 개정 없이 시행령·행정규칙 개정만으로도 바로 시행할 수 있지만 일각에서는 ‘극단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집값 자극을 두려워한 문 정부가 재건축 초기 단계인 안전진단 기준을 대폭 강화해 사업을 아예 틀어막았던 것도 문제지만 안전진단을 면제할 경우 재건축 추진 단지들이 우후죽순 늘어나는 부작용 역시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천장이 뚫린 것처럼 치솟던 집값이 최근 주춤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건축을 호재 삼아 가격이 다시 급등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규제를 완화할 때 이에 대한 기대감으로 집값이 단기 상승하는 영향은 얼마나 될 것인지, 이후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면서 집값은 어느 정도 안정될 수 있는지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윤 당선인이 손보겠다고 한 ‘임대차 3법’의 경우에도 전면 폐지하는 것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문 정부가 2020년 7월 도입한 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전월세신고제 등의 임대차 3법은 전월세 값 상승, 전세보증금 이중 가격 형성 등 각종 부작용을 드러내며 임대차 시장을 왜곡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8일 인수위도 임대차 3법의 폐지·축소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인수위가 밝힌 대로 개선이 필요하다는 방향은 맞지만 제도가 도입된 지 만 2년을 향해 가며 시장이 겨우 적응해 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전면 폐지보다는 문제가 되는 부분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문 정부에서 누더기가 된 부동산 세제를 개편하겠다고 무조건 세금을 줄여주는 방향으로 추진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최근 정부는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 변동률을 전년 대비 17.2%로 발표하면서 1세대 1주택자에게는 지난해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보유세를 부과하겠지만 다주택자는 올해 공시가격을 적용하겠다며 보유세 폭탄을 예고한 바 있다. 정부안에 따르면 서울에서 공시가격 20억 원이 넘는 고가 아파트를 한 채 보유한 사람보다 지방의 저가 아파트 두 채를 보유한 사람이 보유세를 두 배나 더 내야 하는 ‘모순’이 생긴다. 하지만 10억 원이 넘는 서울 아파트 한 채를 가진 사람의 보유세가 자동차 한 대 세금의 두세 배 수준에 그치는 것 역시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인수위 역시 새 정부의 국정 과제를 선정하면서 윤 당선인의 공약 가운데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거나 사회적 논란이 큰 공약들은 과감히 폐기할 수 있다는 방침을 시사했다. 대선 과정에서 현 정부의 정책과 상반되는 차별화된 철학을 담은 공약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당선 이후 공약을 재점검하는 과정에서는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을 다시 구분하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장이나 국민들의 혼란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극단적인 정책 전환에 대한 유혹은 과감히 뿌리칠 줄도 알아야 한다. 다음 정권에서는 부동산 관계 장관들이 2주마다 모여 주간 단위의 부동산 시황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부동산 정책을 펼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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