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벤처에게 기술 수출은 실력을 증명하는 기준이지만 때론 거품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모든 임상을 통과할 경우를 가정한 계약 총액이 기대를 키우지만, 실패할 경우 실망도 크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지난 2년간 24조 원 기술 수출을 한 성과의 이면에는 반환된 계약 10조 원이 존재한다.
사정이 이런 만큼 국내 바이오 벤처 역사상 최대 규모 기술 수출 계약금을 기록한 에이비엘바이오(298380)에게 이목이 쏠렸다.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를 만나 이번 계약에 대해 물었다. 그는 28일 서울경제 인터뷰에서 "좋은 조건으로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팀과 계약한 것"이라며 야구 선수의 미국 진출에 비교했다. 그러면서 "높은 계약금, 마이너리그 강등이 없는 계약 조건 등으로 첫 단추를 끼웠으니 이제 어떤 성적을 낼지는 지금부터 증명하겠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올해 초 에이비엘바이오는 다국적 제약사 사노피를 상대로 퇴행성 뇌질환 치료 이중항체 후보물질 ‘ABL301’를 1조 2800억 원에 기술 수출했다. 그중 선급금만 902억 원으로 업계 최상위 조건이다. 아무리 계약 총액이 커도 임상 성공 여부에 따른 마일스톤 비중을 높여 리스크를 줄이려고 하기 때문에 계약금 비중은 기술에 대한 확신·신뢰도와 비례한다. 이 대표는 "창업(2016년) 이후 6년 만에 장기간 글로벌 제약사 검증을 거쳐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딜(계약)이 됐다"며 "이중항체의 뇌혈관장벽(BBB) 투과에 있어서는 베스트 인 클래스(계열 내 최고 신약)이 되겠다"고 말했다. ABL301는 그랩바디-B 플랫폼 기술을 적용해 파킨슨병 발병 원인인 알파-시뉴클레인(alpha-synuclein)의 축적을 억제하는 항체를 뇌 안으로 효과적으로 전달해 치료하는 임상을 올해 하반기 앞두고 있다.
특히 에이비엘바이오는 이번 계약을 계기로 추가적인 기술 수출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지난해 3월부터 반년 동안 사노피를 포함한 복수의 글로벌 제약사로부터 기술 이전을 전제로 한 실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단순히 실험 보고서의 목차를 만드는 것부터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모든 연구 데이터를 시스템화하는 데 많은 노하우를 습득했다"며 "이번 경험을 통해 글로벌 임상수탁기관(CRO), 빅파마와 소통할 수 있는 연구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실사에 참여한 사노피 외 다른 제약사들과도 ABL301 이외에 다른 후보물질을 두고 추가적인 기술 수출을 협의 중이다.
에이비엘바이오는 그랩바디-T, 그랩바디-I 플랫폼의 파이프라인도 개발을 가속화할 계획이다. 이번 ABL301 계약금 수령을 포함해 단기 마일스톤까지 더하면 연내 최소 2000억 원을 확보해 연구개발(R&D)에 투입할 수 있다. 면역세포 T셀을 활용한 항암제인 그랩바디-T에서는 ALB503, ABL111가 임상 1상을 진행 중이고, ABL101와 ABL105는 올해, ABL103는 내년 글로벌 임상을 추진 중이다.
이 대표는 "코스닥 상장 당시 제출한 기술 이전 계획을 지켜왔으며 전환사채(CB) 발행 없이 직접 벌어들이는 돈으로 자립하는 선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당분간은 기술 수출이 주요 목표이지만, 공동 개발을 통한 역량을 키워 장기적으로는 자체 신약 출시하는게 에이비엘바이오의 비전이다. 이 대표는 "바이오벤처가 누구나 인정하는 글로벌 제약사로 성장하는데 30년 이상이 걸리는데 에이비엘바이오는 이를 단축하고 싶다"며 "향후 3년여간은 지금처럼 우수한 파이프라인을 늘려가면서 점차 직접 임상 진입을 확대해 10년 후에는 기술만이 아니라 좋은 약을 만들 수 있는 회사가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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